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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함께>"유종호 전집"-유종호 著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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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문학평론의 역할은 좋은 작품을 감식해내 독자들에게 해석해주는 것입니다.우선 좋은 작품을 감식하는 눈이 있어야 하고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풀어내는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평론이 특정한이념을 앞세워 작품을 장악하려들거나 독자와의 친 근감만을 내세워 잡담으로 나아가면 문학의 고유한 향기가 사라져 버립니다.』올해 회갑을 맞아 평단생활 39년을 결산하는 전집을 낸 유종호(이화여대 교수)씨는 자신의 평론관을 이렇게 요약한다.22세때인 57년 평론가의 길로 들어선 유씨는 특정경향이나 유파에 소속되지 않고 줄곧 자신만의 길을 고집했다.그는 문학의 이념화에도,순수를 부르짖는 일에도 나서지 않았다.순수를 외치는 구호도하나의 이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같은 결벽함은 끊임없이 운동과 구호를 요구했던 격변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바로 여기에서 문학의 본령을 찾는다.
『한국평단은 어떤 원칙을 정해 놓고 작품을 재단하는 입법비평이 강했습니다.정치현실이 암울했던 80년대까지는 민중문학이 위세를 떨쳤고,여성문제가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요즘은 페미니즘이유행하고 있습니다.이 둘의 공통점은 문학을 사회 과학적 가치로평가하는 것입니다.그러나 문학은 사회적 운동의 도구이기 이전에개인적 체험의 대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이같은 관점으로 비평계의 문제점을 강도높게 비판해 눈길을끌었다.작품을 자기발언의 도구로 장악하려는 입법비평과 인정에 이끌려 잡담처럼 쓰는 평문이 많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그의 주장은 이 자리에 토론자로 참석한 「문지계열」의 평론가정과리씨와 「창비계열」 최원식씨의 즉각적인 반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그의 주장은 평단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그가 이런 민감한 말을 직설적으로 표현할수 있는 것은 자신의 비평태도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일까.그는 최고의 민중시집으로 꼽히는 신경림씨의 『농무』를 집중조명한인물이며 80년대 민중문학 평론가들의 비판의 표적이었던 이문열씨를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유종호 전집』(전5권.민음사)은 시대에 따라진화해온 유씨의 평론 경향을 순서별로 정리하고 있다.이중 최근발표한 평문을 묶은 5권 「문학의 즐거움」은 문학은 즐기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가장 실감나게 전한다.
『지금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 40년동안 평론을 하라면 못할 것같다』는 유씨는 비평가는 작가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명의 독자로 남아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켜준다.
시비평에 관한한 독보적인 권위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여름 손수 쓴 10편의 시를 발표했다.
프로시인들로부터 「잘 쓴 아마추어 시」라는 평이 나왔다.아무욕심없이 시 애독자로서 내친 김에 써 봤는데 그 즐거움 때문에펜을 놓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일생동안 한권의 시집과 소설집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유씨는 해 방직후를 배경으로 한 소설도 한번 써볼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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