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꾸러기] “아빠가 책 들면 아이들도 따라 읽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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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양두환(左에서 둘째)·김상님씨 부부가 위탁양육하고 있는 다섯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아이들 눈높이에 꼭 맞는 ‘책꾸러기’ 그림책은 이들에게 가장 신나는 ‘장난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프리랜서 오종찬]

‘한국의 북스타트 운동’을 표방하며 출발한 ‘책꾸러기’ 캠페인이 꼭 1주년을 맞았다. ‘책꾸러기’ 캠페인은 만 6세 이하 어린이를 키우는 가정에 1년 동안 매달 한 권씩 총 열두 권의 그림책을 무료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으로, 중앙일보와 동원그룹이 2007년 5월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1만5000 가정이 ‘책꾸러기’캠페인의 혜택을 받았으며, 총 11만4100권의 그림책이 각 가정에 배달됐다.

‘책꾸러기’ 캠페인의 첫 ‘졸업생’들도 배출됐다. 지난해 5월 ‘책꾸러기’ 캠페인의 첫 수혜자가 됐던 3000 가정이다. 지난 1년 동안 이들 가정에서 ‘책꾸러기’는 어떤 활약을 했을까. 여섯 아이를 키우는 양두환(49·목사·전주시 평화동)씨 집을 찾았다.

“집에 있는 책만으로는 부족했죠. 큰 애 어릴 때 보던 책들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엔 영 모자랐거든요.”

양씨는 여섯 아이의 ‘아빠’다. 호적상 자녀는 첫째 아들 요한(14)이 하나이지만, 진혁(10·가명)·진구(9)·민영(7)·선영(5)·하은(4) 등 3남 3녀를 키우고 있다. 둘째부터 여섯째까지는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위탁받아 키우는 아이들이다. 부모나 조부모 등 보호자가 있지만, 직접 키울 형편이 안되는 경우다. (기사 중 아이들 이름은 부모의 요청에 따라 가명을 썼음.)

양씨가 위탁부모가 된 것은 2004년부터다. 군산 군장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에 대해 배우면서 양씨는 위탁가정제도를 처음 알게 됐다.

고아원의 단체 생활보다 위탁가정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어린 아이들의 양육 환경으로 훨씬 바람직하다는 데 공감한 양씨는 곧바로 위탁부모를 자원하고 나섰다. 평소 “딸을 키우고 싶다”며 입양을 희망했던 양씨의 아내 김상님(47)씨도 남편의 뜻에 발을 맞췄다.

처음부터 다섯 명을 한꺼번에 위탁받은 것은 아니다.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사정을 헤아리면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맡다 보니 어느새 대가족이 돼 버렸다.

10년을 아들 하나 키우며 단출하게 살아온 부부에게 너무 벅찬 일은 아닐까. 하지만 양씨 부부는 “도리어 쉽다”고 말한다.

“아이는 하나 둘 키우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셋을 넘어가면 자기들끼리 서로 챙겨주고 경쟁하면서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가거든요. 밥 투정도 없어져요. 여러 명이 같이 먹으면 쓴 것도 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여럿이어서 더 단 건 책 맛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림책 한 권도 아이 다섯이 경쟁적으로 돌려보는 귀한 몸이 된다. ‘책꾸러기’책이 도착하는 날, 봉투를 뜯어보는 일부터 서로 하려고 나설 정도로 책이 인기다. 그도 그럴 것이 읽을 책이 부족해 초등학교 4학년인 진혁이는 양씨가 읽는 이문열의 삼국지까지 뒤적였었다.

“독서교육요? 따로 할 필요 없어요. 아빠가 책을 꺼내들면 아이들도 너도나도 책을 들고 모이는걸요.”

아직 글자를 모르는 선영이와 하은이에게는 언니·오빠들이 서로 읽어주려고 나선다. 아이들이 많은 만큼 웃을 일도 몇곱절 더 많아진다. “하하하, 똥이래!” 누구 하나가 웃음을 터뜨리면, 다들 “뭔데, 뭔데”하며 고개를 쑥 내밀고 함께 한바탕 웃곤 한다. 옹기종기 둘러앉아 책 읽는 것 자체가 신나는 이벤트인 셈이다.

지난 1년 동안 양씨 가족은 ‘책꾸러기’ 캠페인을 통해 『우리 몸의 구멍』『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콧구멍을 후비면』 등을 받았다.

다섯 아이들의 손길을 탄 책 표지는 이미 새 책의 빛은 잃었다. 대신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반짝하다.

“강아지가 유모차 끌고, 돼지가 자전거 타는 게 재미있었어요.” 어떤 책이 제일 재미있었냐는 질문에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의 한 장면을 끄집어내는 민영이. 책 구석구석을 다 외운 듯했다.

전주=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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