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부지교’ 앤서니 김 생애 첫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앤서니 김이 우승을 확정지은 뒤 모자를 벗고 갤러리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버클에는 그의 영문 이니셜인 ‘AK’를 새겼다. [샬럿 AFP=연합뉴스]

재미교포 2세 앤서니 김(23·한국 이름 김하진)이 5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할로 골프장(파72·7442야드)에서 열린 PGA 투어 와코비아 챔피언십에서 합계 16언더파로 우승했다. 지난해 타이거 우즈(미국)가 우승하면서 세운 대회 최소타(13언더파) 기록을 3타나 줄였다.

프로 데뷔 2년 만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앤서니 김은 이날 우승상금 115만 달러(약 11억원)를 받아 상금랭킹 6위로 뛰어올랐다. 벤 커티스(미국)가 5타 뒤진 합계 11언더파로 2위에 올랐고, 필 미켈슨(미국)은 공동 12위(5언더파), 비제이 싱(피지)은 공동 17위(4언더파)에 머물렀다. 지난해 챔피언 우즈는 최근 무릎 수술을 받은 탓에 출전하지 않았다.

앤서니 김의 성공 신화는 맨주먹 하나로 일군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다. 아버지(김성중·66)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이겨낸 뒤 프런티어 정신을 앞세워 꿈을 이뤘다.

◇생애 최고의 순간=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그의 기량은 세계 정상급이었다. 특히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6언더파를 몰아치자 제이슨 본(미국)은 혀를 내둘렀다.

“마치 우즈와 경기를 한 기분이었다. 오늘만큼만 하면 그를 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최종 4라운드에서도 그는 신들린 듯한 경기를 펼쳤다. 드라이브샷이 잇따라 페어웨이를 가른 데 이어 5m가 넘는 롱퍼팅을 홀 속에 쏙쏙 떨어뜨렸다. 전반 9홀 퍼트 수가 9개밖에 되지 않았다. 4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4라운드에 나선 그는 1번 홀 버디에 이어 5, 7, 8번 홀 연속 버디로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18홀 그린으로 걸어갈 때 기분은 내 생애 최고였다. 아버지, 가족들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골프에 모든 걸 걸다=그가 골프를 시작한 건 두 살 때인 1987년. 71년 미국으로 건너간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 클럽을 처음 잡았다. 그의 부모는 외아들을 강하게 키웠다. 연습을 게을리하면 가차없이 매를 들었다. 오버파 기록으로 우승한 아들의 트로피를 내던졌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아들이 골프에만 매진하도록 LA 시내의 집을 팔고 사막 지형인 라킨타의 PGA 웨스트 옆으로 이사가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앤서니 김은 아마추어 시절 미국주니어골프협회가 뽑는 최우수선수상을 4년 연속 수상하며 승승장구했다.

◇프런티어 정신=앤서니 김은 당돌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10대 때는 스파르타식 훈련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잦은 마찰을 빚었다.

오클라호마대 재학 시절엔 감독과 싸워 출장정지를 당했고, 프로 데뷔를 앞두곤 “타이거를 잡는 라이언이 되겠다”고 말해 입방아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선 투우사처럼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쇼맨십을 보여줬다. 이런 그의 행동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야 말겠다는 프런티어 정신과 맥이 통한다. 그는 지난해 골프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마스터스의) ‘그린 재킷’도, (브리티시 오픈 우승 트로피인) ‘클래릿 저그’도 모두 갖고 싶다. ”

정제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