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칼럼

지금 당신이 이 책을 다시 꺼내들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에드워드 챈슬러 저, 강남규 역
『금융투기의 역사』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01

어떤 종류의 책들은 읽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이런 부류의 책은 그런 시기를 놓치면 읽는 재미가 훨씬 덜하다. 반면 시의적절한 독서는 책의 가치를 몇 배에서 몇 십 배까지 높여 준다. 나는 요즘 그런 책으로, 주저 없이 『금융투기의 역사』(에드워드 챈슬러 저, 강남규 역,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01)를 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으로 몇 년간에 걸쳐 벌어질 일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다. 요즘 세계는 금융 불안과 경기 침체 우려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일부 언론에서 얘기하듯, 단순히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2000년대 초반, 멀리는 90년대 중반 이후 거듭된 투기와 거품이 막 붕괴되고 있어서다. 이 시기 전세계는 엄청나게 풀린 자금 덕에 사상 초유의 저금리, 즉 낮은 돈 값을 경험했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는 투기가 횡행했고, 이들 자산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그런데 그런 빚잔치의 시대를 이제 막 마감하려 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투기와 거품은 결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후 늘 반복돼 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금융투기의 역사』는 바로 그 기록이다. 투자은행 출신의 경제 칼럼니스트인 에드워드 챈슬러는, 인터넷 기업 투기가 한창이던 지난 1999년 이 책을 펴냈다. 그는 17세기 초기 자본주의의 투기에서 19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에 이르기까지, 크게 9가지의 대표적 투기와 거품 사례를 다뤘다. 이들 가운데는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예들도 있다.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나 영국의 사우스시(South Sea) 투기, 19세기 중반의 철도 거품 등이 그런 예이다. 20세기 이후의 투기 사례들도 비교적 우리에게 익숙한 편이다. 반면 1690년대 영국의 주식회사 붐이라든가 19세기 후반 미국 황금광 시대의 투기처럼 비교적 낯선 예들도 있다.

이 책은 투기(speculation)가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18세기 후반 경제학적 개념으로 자리를 잡은 후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모호하다. 애덤 스미스나 존 M. 케인즈는 ‘이익을 얻기 위해 시장의 심리 변화를 예측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그러나 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칭송받는 투자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누구도 단언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투기를 실패한 투자, 투자를 성공한 투기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미국 월가의 유명한 풍자가였던 프레드 슈드는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것이, 사랑에 들뜬 10대에게 사랑과 성욕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다. 투기와 투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구분하든 큰 의미는 없다. 투기와 투자에 관해 이 책이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면 이것 하나다. 둘 다 떼돈을 벌기 위한 사람들의 모험이며,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이 책은 풍부한 예화로 빛난다. 지나치게 오른 자산 가격을 의미하는 거품(bubble)이라는 말의 어원도 등장한다. 18세기 전반 라틴아메리카의 개발을 내건 영국의 사우스시주식회사 주가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10배 이상 올랐다. 당시 이 회사의 주식 투자 열기는 상류층 대부분이 가담한 일종의 집단 광기에 가까웠다. 그리고 5백여일만에 회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거의 모든 종목이 80%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당시 이 투기에 가담했다 패가망신한 천재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나는 천체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미친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사우스시사의 주가 폭락 직후 한 일간지는 이런 헤드라인을 달았다. ‘사우스시의 꿈이 한바탕 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3백여 년 동안 변함없이 각광받는 거품이란 말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책은 단순한 투기 역사서는 아니다. 투기가 현재 진행형인 이상 과거의 경험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 대서양 양안(兩岸)에서 불었던 철도 거품은 20세기 후반의 인터넷 거품을 연상케 한다. 철도가 사람과 화물의 유통 혁명을 불러오던 당시 철도 기업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 덕에 영국과 미국 전역에 철도가 생겨났다. 그런데 늘 그렇듯 그 열기가 지나쳤다. 예를 들어 사람 한 명 탈 일 없는 구간에 레일을 깔겠다는 기업들의 주가마저 폭등했다. 그러나 실제로 막대한 투자자금을 끌어들여 철도를 운영해보니 당초의 예상과는 달랐다. 많은 철도 기업들이 적자를 냈고 도산 직전까지 몰렸다. 철도 기업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물론이었다. 1백50년 후 똑같은 일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졌다. 철도 대신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 대상이 됐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물론 한바탕 투기와 거품의 끝에도 남는 것은 있다. 단순히 그 시작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망하거나 주가가 크게 떨어졌지만, 철도와 인터넷은 남았다. 이 새로운 기술들은 경제의 효율성을 크게 높여주었다. 철도의 경우는, 영국과 미국의 경제 성장률을 매년 0.5% 가까이 높여주었다. 인터넷의 경우도 장기적으로 그보다 더한 기여를 할 전망이다.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거품이 장기적으로 합리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에서 미래의 전략을 도출할 만큼 영민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팁이 여기 있다. 앞으로의 금융과 경제 상황, 더 나아가서는 재테크 전략을 한 번 짜보자. 앞으로 자산 시장에서는 거품이 가라앉을 것이다. 부동산 시장은 이미 한두 해 전부터 그랬고, 주식도 막 시작됐다. 시중에 돈은 줄어들고 금리는 뛴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실물 경제도 쉽사리 나아지지가 않을 것이다. 속도와 정도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전세계는 이미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돈을 굴리는 것이 좋을까? 역시 과거의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투기와 거품이 사라지고 난 1970년대 미국이나 1990년대 일본이 좋은 예다. 이 당시는 자산시장 급등에 편승해 돈을 벌려 하기보다는, 경제의 불확실성을 경계하며 자신의 원금을 지키려는 자산 보호(asset protection) 전략이 유효하다. 이전처럼 빚내서 돈 벌려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원제가 앞으로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우리 말 번역서 제목은 『금융투기의 역사』지만, 이는 원서의 부제다. 원제는 『Devil Take The Hidmost』다. 직역하면 ‘악마는 맨 마지막을 나꿔챈다’ 쯤 되겠지만, 통상 ‘빨라야 살아남는다’는 정도의 의미를 담는 관용 표현이다. 흔히 ‘every man for himself’라는 관용 어구와 댓구를 이뤄 사용된다. ‘스스로를 돌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회는 없어지는 만큼 빠른 사람이 제일이다’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이 말을 투기와 거품 용어로 바꾸자면, 이쯤 되겠다. ‘빨리 움직여야지, 상투 잡으면 곤란할 걸.’ 이 말 그대로다. 빚잔치의 막바지에서 이 책을 접고 나면, 당신은 정신이 번쩍 들지도 모르겠다. 이제 정말 골치 아프게 됐다.

김방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