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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지리기행>1.강원도 삼척 신기면 "골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본지는 땅에 대한 새로운하지만 경험상 땅속에 어떤 기운이 인생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풍수지리가 그것이다.풍수지리의 경우 서양과학적 사고로 인해 일부에서는 미신으로 치부하고있고 또 일부에서는 과신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한다.그러나 땅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문지리와 풍수지리 양자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그런 점에서 본지는 땅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오늘날 문제되고 있는 환경문제의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 인문지리와 풍수지리의 양쪽에 조예가 깊은 前 서울대 최창조교수의 지리기행을 연재한다.이 시리즈는 우리의 전통마을과 고을의 지리적 자료 및 풍수적 정보를 축적함으로써 현대지리학 뿐만 아니라 건축학.조경학.역사학.민속학 등여러 분야에 기초자료 를 제공하는 소득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바란다.
[편집자註] 지금 사람들은 몹시 불안해 한다.그가 사는 곳이시골이든 도회지든 편안한 삶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분명 경제적으로는 잘 살게 되었다고 하는데 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 는 것이다.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피곤하고 고달프기 짝이 없다.공기는 공기가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쾌한 바람과 맑은 물은 우리들이 당연히누려야 하는 어떤 것으로만 여겼다.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이 환경을 고려치 않는 개발은 자멸행위라는 경고를 메시지로 보내 오는 지경이다.바람과 물의 길,그것은 풍수(風水)의 도(道)다.풍수는 바로 그 당연한 것을 되찾자는 취지에서 현대적 의미가 있다.그 좋았던 바람과 물을 되찾아 불안없는 터전에서 살아보자는 것이 풍수가의 꿈이다.나는 이제 바람과물의 길을 따라 아무런 근심 걱정없는 안정 희구(希求)의 삶터를 찾아 나서고자 한다.
지금까지 나는 먼저 풍수의 이론을 앞세우고 그것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매우 고답적인 답사에 치중해 왔었다. 그런데 무척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그것은 바로풍수의 이론은 주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것이지만 그 현장은 우리 풍토에 맞는 풍수가 펼쳐진 곳이기 때문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이란 점이다.이론을 중시하고 이루어진 조선조 중.후기양반촌의 터잡기가 썩 좋은 것이 못된다는 사실이 바로 현장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풍수가 찾고자 하는 터는 어떤 곳일까.한마디로 불안이 없는 땅이다.그런 땅은 어디인가.바로 어머님의 품속 같은 곳이다.안온하고 안정돼 있으며 근심걱정이 없는 터.바로 어머님 품안같이생긴 땅에서 사람들은 편안하게 살았다.
풍수는 그렇게 생긴 터를 좋아한다.그래서 좌우의 청룡과 백호는 어머님의 양팔이 되고 주산(主山)인 현무사(玄武砂)는 어머님의 몸이 되는 것이다.그 가운데가 바로 명당(明堂)이니 명당은 바로 어머님의 품속이 아니고 무엇인가.그곳은 아무런 걱정없이 태초의 평안 속에서 오직 만족만을 느끼며 살았던 품이다.그품을 떠나면서 근심과 불안은 시작되었다.마치 오늘의 우리들이 고향이라는 명당을 떠나 도시의 잡답 속에서 불안을 떠안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품안에 안긴 것만으로는 아직 안심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그들은 더욱 진전해 아예 어머님의 자궁 속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염원을 드러내기도 한다.그곳이야 말로 우주 태생(胎生)의 평화가 깃들인 곳이라 믿는 것이다.강원도삼 척시 신기면대이리의 골말이 바로 그런 곳이다.환선굴이라는 석회동굴로 외지에 제법 알려진 곳이지만 지금 그 굴은 폐쇄돼 있다.본래 20여호의 화전민들이 살던 이 마을에는 지금 두어집밖에 남아있지 않다.그들은 필경 정감록 신봉자였음이 분명하다.하지만 처음 만난 골말의 할아버지는 그점을 강하게 부인했다.아마도 정감록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가 미신에 통하기 때문에 그랬던 모양이다.얼마후 외지인에 대한 본능적인 반감을 지운뒤에 보여준 정감록 필사본 일부는 이곳이 분명 정감록村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태백산 연맥이랄 수 있는 덕메기산(德項山)을 비롯해 같은 줄기인 양태메기.지각봉.물미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니,그곳을 일러 어머님의 뱃속이라 표현한들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지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자호란 이후 인조때 경기도 포천에서 이곳으로 들어온 마을 입향조(入鄕祖) 李시두는 이곳이 어머님의자궁 속이라는 보다 확실한 증거를 원했던 모양이다.그것이 바로분지(盆地)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촛대배이(촛대봉 또는 촛대병바위)다. 이 거대한 석물은 태백의 터줏대감인 사진작가 李석필씨말마따나 위에 콩알을 떼어낸 좆대봉(좆대배이)이 바른 이름일 것이다.그리하여 어머님의 자궁 속에서 원초적 생산을 행하기 위해 삽입된 아버님의 발기(勃起)한 양물(陽物)일 것이 분명한 이 좆대봉으로 말미암아 골말은 한 점 의심의 여지없이 자궁 속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티끌만한 불안도 있을 수 없는 터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병자호란 이래 11대째 이곳에 살고 있다는 李종옥(74세)할아버지의 집은 소나무 널판으로 지붕을 덮은 너와집인데 지난 겨울 이곳을 찾았을 때도 낮술에 취해 계시더니 이번 초가을에도 역시 낮술에 젖어 계신다.극단의 평온을 갈구하는 마음이 그를 이곳에서 마저 취몽(醉夢)의 세계로 이끌었음인가.환선굴에서 시작되었다는 마을 곁을 흐르는 환선천은 슬프도록 푸르고 맑아 바라보기에도 가슴이 시리다.그러나 그 슬프도록 시린 계곡 물도 머지않아 더렵혀지려니 싶어 마음이 개 운치않다.아닌게 아니라 대이리 계곡 입구는 벌써 오염의 시작이랄 수 있는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너와집에는 아직도 고콜(혹은 코쿨.일종의 벽난로 겸 조명시설)과 까치궁기(까치구멍으로 집안의 연기를 뽑아내는 환기통)가 실용 상태로 쓰이고 있었는데 방을 따뜻하게 덥혀줌은 물론이고 그 밝기도 책을 읽을수 있는 정도였다.
이 집과 마주하고 있는 밥집 변소 밑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린다.밥을 시켜놓고 들어간 변소에서 본 구더기들이지만 전혀 입맛을떨구지는 않는다.글쎄 그것이 어릴때 익숙했던 장면이라서인가.정겹기까지 한것은 무슨 까닭인지.서울대 인류학과 전경수교수의 표현대로「똥이 자원」이라면 이처럼 살아있는 똥이 진짜 자원일 것이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큰 망발은 아닐 듯하다.
▲1950년 서울에서 출생 ▲경기고.서울대문리대 지리학과및 동대학원 졸업 ▲국토개발연구원 주임연구원,전북대사대 지리교육과조교수,서울대사회대 지리학과 교수 역임 ▲저서:『한국의 풍수사상』『땅의 논리,인간의 논리』『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역서:『터잡기의 예술』『금낭경.청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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