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편애’와 강한 역사의식이 생존의 동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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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12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에후드 올메르트(왼쪽) 이스라엘 총리,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함께 지난해 11월 27일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평화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 건국 60주년을 맞는 나라는 한국 말고도 이스라엘이 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2500여 년 동안 나라 없이 뿔뿔이 흩어져 살던 서러운 역사를 뒤로하고 건국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음력인 히브리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올해 건국기념일은 5월 8일이다. 이스라엘은 환갑을 기념해 레이저 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행사, 이스라엘-아랍 공존을 주제로 한 워크숍 등을 개최한다. 또 이스라엘을 순환하는 1200㎞ 길이의 자전거 도로와 갈릴리호를 순환하는 보행자 도로를 건설했다.

8일 건국 60주년 맞이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위한 기독교인 연합(CUFI)’ 회원들이 지난달 예루살렘에서 지지 행진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60년 동안 기적을 일궈냈다. 인구가 건국 당시보다 10배로 늘어났다.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야파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있다. 소련 붕괴 이후 그곳에 살던 1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유입됐다. 그중에는 첨단기술을 겸비한 전문인력도 많았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기술 경쟁력은 더욱 높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뉴욕 증시의 나스닥(NASDAQ)에 미국·캐나다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회사를 상장시킨 나라가 됐다.

이스라엘은 16만8000명의 군대와 함께 핵무기를 갖고 있다. 진정한 중동 평화는 요원하지만 카타르·이집트·요르단과의 외교관계도 수립했다.
이스라엘의 기적적인 생존 자체가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룩한 최대의 성과다. 자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엄청난 믿음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의 사어(死語)가 된 히브리어를 소생시켜 국어로 삼았다. 이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이스라엘의 기적 뒤에는 미국이라는 강력한 후원자가 있다.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전국위원회가 구성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을 치르고 있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는 공동부위원장을 맡았다.

조지 부시·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한 역대 국무장관들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기념행사를 위해 13일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내년 1월 퇴임하기 전까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분쟁을 종식시키려는 희망도 담겨 있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스라엘을 승인했다. 건국 선포 후 11분 만이었다. 미국은 아직도 이스라엘에 대해 연 평균 30억 달러를 원조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누적 원조액은 1000억~1400억 달러로 추정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부유하다. 그럼에도 미국의 납세자들을 희생시켜 가며 막대한 원조를 받는 것은 이스라엘에는 대단한 특권”이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85년 이스라엘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최초의 나라가 됐다. 미국은 또 이스라엘에 불리한 유엔 결의안이 상정되면 이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해 왔다. 미국의 강력한 후원은 어쩌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아시아·유럽·아프리카가 만나는 지역에 있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 이스라엘의 군사력과 첩보능력, 독재국가들로 둘러싸인 민주국가를 수호해야 한다는 의무감, 유대인 학살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자책감, 이스라엘 관련 단체의 로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편애’는 차기 정권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대선 주자들의 발언 속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각별한 지지가 담겨 있다.
“이스라엘을 방어하는 데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매케인) “이란이 이스라엘에 핵공격을 가한다면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공격으로 이란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힐러리)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자 유일한 민주국가다.”(오바마)

그러나 이스라엘 내부적으로는 건국 60년을 맞이해 뒤숭숭한 분위기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2006년 레바논 전쟁이 실패로 끝나 이스라엘의 아랍세계에 대한 불패 신화가 깨졌다는 것이다. 시리아·이란의 후원을 받는 헤즈볼라(레바논의 과격 시아파 조직) 혹은 하마스(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와는 계속 전운이 감돈다. 하마스가 60주년 행사를 할 때 테러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첩보도 흘러 다닌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로 달려왔지만 이스라엘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자성도 일고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나크바(대재앙)’였다. 70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나 요르단·시리아·레바논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영국에 살고 있는 100명의 유대인들은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최근 발표했다.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시온주의도 퇴색해 네 명 중 한 명은 병역을 기피한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연정 구도 속에서 우파·좌파 모두 자신감을 상실했다.

이번 건국 행사 중에는 150만 개의 구슬을 모으는 게 있다. 대학살로 희생된 수백만 명 중에서 어린이 희생자 150만 명을 각별히 추모하기 위해서다. 젊은 세대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보여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학살기념관의 벽면 동판에는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역사를 잊지 않고 역사로부터 배우는 민족이기에 이스라엘 국민 690만 명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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