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교회 밀월관계 ‘쌍두마차’ 시대에도 순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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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16면

알렉세이2세

4월 27일 러시아정교회의 부활절 미사에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했다.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인 알렉세이 2세가 집전한 미사였다. 이들은 총대주교의 뺨에 세 번씩 키스했다. 세 지도자는 23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도식에도 함께 나타났다. 예식을 거행한 것은 역시 알렉세이 2세였다.
앞으로도 세 지도자가 함께 국민 앞에 서는 일이 잦을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헌법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푸틴 시대에 정부와 교회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이제 러시아정교회는 국교처럼 대우받는다.

보수화 바람 타고 國敎 대우받는 러시아 정교

러시아정교회는 푸틴 시대에 날개를 폈다. 옛 소련 공산정권의 종교 박해가 극심했던 시기에도 정교회가 불법화된 적은 없다. 메드베데프 시대에도 정부와 교회는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정교회는 교세 확장을 위해 정부라는 방패막이 필요하다. 러시아에서 정교회는 종교라기보다 문화·전통에 가깝다.

‘강한 러시아’를 지향하는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러시아 고유의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러시아정교회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다. 신자 수를 과장하는 통계에 따르면 국민의 70%가량은 정교회를 믿는다. 하지만 올해 부활절 미사에 참석한 신자는 고작 713만 명이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2006년 말 현재 인구의 15∼20%만 정교회를 믿는다고 추산했다.

옛 소련이 붕괴하자 지구상의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교파는 러시아에 진출했다. 정교회는 이들의 ‘개종’ 시도에 격분했다. 이미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포교한다는 것은 러시아 정교회가 뭔가 ‘부족’하거나 심지어 ‘이단’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모스크바가 로마·콘스탄티노플에 이어 ‘제3의 로마’라고 자부하는 러시아정교회 입장에선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이제 겨우 교세 회복 단계인 정교회는 미국·유럽을 기반으로 해 자금력이 앞서는 교파들과 경쟁하기 힘들다. 정부 입장에서도 해외에서 유입된 교파는 분리주의나 종교적 극단주의의 씨앗이다. 심하면 스파이가 선교사 중에 포함돼 있다고 의심한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4월 ‘비정부기구(NGO)법’을 발효해 교회와 모든 NGO의 등록을 의무화했다. 자금 출처와 집회 기록도 제출하게 만들었다.

개신교 교파들은 심한 타격을 받았다. 1990년대만 해도 침례교·루터교·오순절교·감리교·안식교 등이 활동하는 게 쉬웠다. 개신교 신자는 인구의 1.5%(약 2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시베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정교회보다 신자 수가 많다. 현재도 5000여 개의 개신교 단체가 선교활동을 펴고 있다. 러시아 정부, 특히 지방정부가 이들에게 가하고 있는 탄압은 앞으로 미·러 간 외교문제로 번질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종교 탄압은 없으며 교회 창설과 활동에 대해 법적 기준을 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에는 약 60만~150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다. 가톨릭과 러시아정교회의 새로운 관계 설정도 ‘쌍두마차’ 시대에 부과된 과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러시아 방문을 염원했으나 러시아 땅을 밟지 못했다. 그는 2002년 러시아에 가톨릭 교구를 획정해 정교회의 분노를 일으켰다.

현재 러시아에는 인종차별주의를 내세우는 스킨헤드족(族)이 7만 명가량 있다. 이들은 2008년에만 57명을 살해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비슬라브계 러시아인이나 이민자들이었다. 스킨헤드족 중에는 신(新)나치스주의자도 포함된다. 이들은 히틀러의 생일에 대규모 시위를 조직한다. 파시즘과 싸워 승리한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 정부로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공산주의를 폐기한 자리에 민족주의를 채워 넣는 과정에서 배타적 극우민족주의가 틈새를 파고든 것이다. ‘건전한 민족주의’를 담을 수 있는 정교회가 러시아 정부에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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