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가까워지고 남북은 멀어지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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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06면

2일 저녁 서울 광화문이 촛불시위대로 가득 찼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에 반대하는 시위대다. 이날 낮. 정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남북 간 대화를 위해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방을 중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언급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2개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이어진 대외 정책의 항로를 틀면서 대내외적으로 느껴지는 갈등 기류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 체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추동력을 높이기 위해 타결한 쇠고기 수입 협상은 새 정부의 대외 정책에 대한 반감과 얽혀 강력한 저항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외교·대북정책은

이 대통령은 2월 25일 취임사에서 외교와 대북 정책 기조를 밝혔다. 글로벌 국격 외교와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 강화를 강조했다.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에 나서면 10년 내 북한 주민 소득을 3000달러가 되게 돕겠다는 ‘비핵·개방·3000’ 정책도 재확인했다. “남북 문제는 민족 문제인 동시에 국제 문제”(3·1절 기념사)라고 밝혔다. 각론보다 주로 대북 협상의 원칙론을 강조했다. 총선(4·9)이 끝난 뒤 방미 기간을 활용, 대북 유화 발언을 잇따라 쏟아냈으나 북한은 각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미국과의 북핵 신고 문제가 순조롭게 풀려 나가면서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소통하며 남한을 배제하는 전략)’이 시중의 화두가 됐다.

지난 2개월의 평가는 시각에 따라 엇갈린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한·미관계를 21세기 전략동맹으로 설정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불신으로 삐걱거린 한·미관계를 정립했다”고 말한다.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과시함으로써 통미봉남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것도 성과라고 했다. 껄끄러웠던 한·일관계도 일단 정상회담을 통해 분위기를 바꿨다. 쇠고기 수입 협상이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의 미 측 요구 수용 가능성, 아프가니스탄 경찰력 파견 검토 등을 들며 대미 퍼주기 외교를 하고 왔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은 이 대통령이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은 이틀 뒤인 3월 28일 서해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대통령이 “1991년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 정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 데 대한 반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 정상선언의 실천을 강조하며 이 대통령에 대한 비난 공세를 취해 왔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이 두 개 합의는 북한 입장에선 김 위원장의 치적이고 이에 대한 부정은 리더십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새 정부 출범 시 그간의 대북 정책과 북·미관계 흐름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 없이 ‘잃어버린 좌파 10년’을 되찾겠다는데 매몰돼 북한을 그저 ‘불량국가 길들이기’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 문제였다는 게 고 교수의 지적이다.

북한의 반응은 예상됐던 것이며, 제대로 된 남북관계 성립을 위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진통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김성한 교수는 “더 이상 북한이 으름장을 놓는다고 굽히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청와대 내 북한 전문가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철학 기조가 아닌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비핵·개방·3000’은 북한 입장에선 자신들의 면역체계(핵개발)를 와해하고 자본주의 바이러스(개방)를 침투시키겠다는 일방적 정책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최근 정부의 대북 접근은 미세한 조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6·15 선언과 10·4 선언 등을 언급하며 “남북 간 협의로 실천 가능한 이행 방안을 검토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당분간 남북 당국자 간 대화는 힘들어 보인다면서 민간 차원의 접촉을 통해 대화의 물꼬를 틀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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