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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와인과 시, 권투를 좋아한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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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체(Che), 회상
알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랜덤하우스,
324쪽, 1만2000원

시가를 입에 물고 특유의 웃음을 짓던 전설의 혁명가 체 게바라(1928~67). 한 남자로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총을 들고 민중을 지휘했던 체 게바라도 뜨거운 사랑을 했고, 네 명의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린 아내가 있었다.

아내의 이름은 알레이다 마치. 게바라와 혁명의 와중에서 이념적 동지로 만났다. 그가 처형당할 때까지 8년간 함께 살았다. 쿠바 태생의 그녀는 교사 생활을 하다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에 맞서는 반군의 혁명에 뛰어들었다. 1958년 24세에 사령관 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온몸에 십자가 모양으로 돈을 붙여 게릴라 활동 자금을 전달하던 길이었다.

“체와 만났을 때 내가 한 처음으로 한 일은 내가 왜 그곳에 왔는지를 알리는 것이다. 돈을 안전하게 가져오느라 몸에 붙인 반창고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체가 즉시 나를 도와주라고 명령을 내리자 많은 지원자가 우르르 일어났다.”

아내가 털어놓는 남편 체의 일상은 가깝고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체는 물에 탄 붉은 포도주를 즐겼다. 토요일에는 TV앞에서 권투 경기를 보곤 했다. 그는 주로 2층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조용히 미래를 구상했다. 그는 역사·정치·철학과 더불어 라틴아메리카 시인의 작품에 푹 빠졌다. 그는 분야를 넘나드는 독서광이었다. 떨어져 지낸 기간에는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달콤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내 사랑, 루브르에서 당신과 함께 손을 잡고 있는 것을 꿈꾸오. 여기 그려진 당신, 살짝 뚱뚱하고 진지하며 약간 슬픈 미소를 머금고 멀리 떨어져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그건 나겠지? 아니면 다른 사람?) 당신을 보았소. 그리고 당신을 더 잘 보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 배에 숨어있는 아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당신 손을 놓았소. 아들이지? 당신의 낭군 체로부터.”

이 책은 “무릎 꿇고 살기 보다는 서서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하던 체를 가장 가까이 지켜본 아내의 이야기다. 공산주의 몰락 20년이 지난 지금도 인기가 여전한 체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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