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장기집권 보험왕’ … 그들이 왕관을 놓지 않는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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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은 해마다 최고의 실적을 올린 설계사나 지점장에게 ‘연도대상’을 준다. 그런데 수상자들 면면이 낯이 익다. AIG생명 부산지점의 장길동(49) 세일즈 매니저는 5년 연속, 녹십자생명 포항지점의 황숙희(47) 재무플래너(FP)는 4년 연속 보험왕에 올랐다.

지난해 만삭의 몸으로 대한생명 보험왕을 차지한 울산지원단 정미경(33) 세일즈 매니저는 올해도 대상을 받았다. 예씨만큼은 아니지만 ‘장기집권’을 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장기집권 ‘보험왕’의 공통 분모를 따져봤다. 영업지역은 부산·대구·울산 등 지방 대도시가 대부분이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서울의 경우 보험사 간 경쟁이 치열하고 은행·증권사의 VIP 고객 영업도 뜨겁다”며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지방의 능력 있는 설계사들이 연이어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VIP 마케팅에 능통했다. 의사와 골프를 접목하기도 했다. 보험뿐 아니라 부동산·펀드 등 종합 재테크 전문가인 점도 비슷했다. 다양한 강연을 통해 잠재 고객도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감동한 고객이 다른 고객을 부른다=예영숙씨는 신규 고객보다 기존 고객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둔다. 1500명에 달하는 고객 관리를 위해 직원 세 명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일정 기간을 정해 고객 불만을 꼼꼼히 체크한다. 예씨는 “한 명의 고객을 얻는 것은 100명의 잠재 고객을 얻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2000년 보험업계에 뛰어든 녹십자생명의 황숙희씨. 시작은 실망스러웠다. 월 50만원 정도의 수입이 고작이었다. 그만둘까 고민도 많았다. 그러나 2002년 VIP 마케팅에 눈을 뜨면서 달라졌다. 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를 고객으로 확보한 이후 그가 소개해 준 고객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현재 VIP 고객만 200명 정도다. 그는 고객들 간 친목 도모를 연결해 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황씨는 “보험상품 하나 더 파는 것보다 고객의 믿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능 재테크 전문가가 돼야=대한생명 정 매니저는 의사와 골프를 접목해 성공한 케이스다. 울산 지역 의사 5명씩을 묶어 팀을 만들었다. 골프 등을 통해 서로 교분을 쌓게 했다. 골프 모임엔 남편이 대신 지원사격에 나선다. 지난해엔 20명의 고객을 모아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의사들의 학회와 소규모 모임엔 빠지지 않고 참석해 틈나는 대로 재테크 강의를 한다. 이런 내공이 쌓이면서 정씨는 ‘의사들의 재정주치의’로 불리고 있다.

AIG생명 장 매니저도 재무설계 특강 세미나나 강연회를 활용한다. 대상은 기업인이다.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설문을 돌리는 것도 그의 노하우다.

보험 가입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런 고객을 공략하고 나면 영업이 일사천리로 풀리기도 한다.

삼성생명 예영숙씨는 한 고객을 9개월간 설득한 끝에 보험에 가입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예씨는 “(보험)하나만 들어달라는 읍소형은 안 된다”며 “보험이 왜 필요한지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니 길이 보였다”고 말했다.

보험뿐 아니라 펀드와 부동산도 잘 아는 재테크 전문가가 돼야 한다. 고객 수준과 요구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예씨는 간접투자증권 판매 권유인 자격증을 갖고 있고, 현재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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