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아이템] 자연을 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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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최근 패션 트렌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1990년대 초에는 새롭게 해석된 히피 패션이 한창 선보였습니다. 화려한 프린트의 실크 셔츠와 벨보텀(Bell-bottom·무릎 아래로 물결 모양의 주름을 넣어 종 모양으로 만든) 팬츠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지아니 베르사체를 비롯해 많은 디자이너가 앞다퉈 유행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히피의 열기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에콜로지(Ecology)풍의 패션이 화보와 광고에 속속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 덕에 한동안 도시 곳곳이 베이지 컬러로 물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역사는 돌고 돌아 최근 히피풍의 패션이 회자되면서 그 에콜로지가 또다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초와는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다릅니다.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이나 갑작스러운 기상 이변과 같이 지구의 오염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일까요? 겉모습으로만 에콜로지 패션이기보다는 친환경 또는 재활용 소재를 쓰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으로서의 패션이 많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최근 여러 패션 브랜드에서 코코넛·대나무·녹차·콩 등 천연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아디다스는 아디그룬(adiGrun)이라는 새로운 친환경 라인을 발표했습니다. 땅속에 묻으면 100% 자연 분해된다니 칭찬받아 마땅한 획기적인 제품들이겠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찾아간 어느 아디다스 매장 직원은 제 코 가까이 신발 안쪽을 갖다 대더군요. “냄새 한번 맡아 보세요! 옥수수 냄새 같죠?” 살짝 망설이긴 했지만 코끝을 집어넣을 정도로 깊게 신발 안쪽 냄새를 맡으면서 기분이 좋았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친환경 패션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하나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뿐인 지구가 좀 더 쾌적한 상태가 될 때까지 말이죠.

하상백(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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