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즐겁게>오토바이 매니어 화가 김혜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현대인은 바쁘다.그러나 판에 박인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인생을더욱 기름지게 즐기려는 레저인구가 소득수준 향상과 함께 급격히늘고 있다.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생활을 즐기려는 레포츠의 파이어니어들을 소개한다.
[편집자註] 29세,그 여자의 아침은 남다르다.
출근길 교통전쟁에 많은 사람들이 시달릴 때 그는 6백㏄급 중형 오토바이 스티드를 몰고 서울 남부순환도로를 달린다.청바지 차림에 검은 장화를 신고 아침이면 흑우(黑牛)를 몰듯 질주하며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그 여자는 서울광진구화양동 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혜숙(金惠淑.화가)씨.
그가 집을 나서 맨처음 도착한 곳은 화실 근처에 있는 검도장. 죽도에 정신을 모으고 허공을 가르다 보면 온몸이 싱싱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다.목검 하나로 남자 서넛은 거뜬히 대적할 수 있는 2단의 실력.
그가 검도를 시작한 것도 오토바이 때문이다.92년 대학(홍익대 서양화과)을 졸업하고 틀에 박인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자연히 기동성 있는 오토바이에 마음이 쏠렸다.
그후 2백㎏이 넘는 오토바이를 끌기 위해 체력이 요구되자 검도를 시작하게 됐던 것.
『하루하루를 새로운 기분으로 생활하고 싶어요.어느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게 자신에게 충실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거든요.』 오토바이는 나날을 새롭게 살기 위한 도구라며 앞으로 대형버스 운전은 물론 트랙터나 경비행기에도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전에는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의 순수와 만나기도 하고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웃음짓기도 한다.도서관에 들러 책 속에 파묻혀 곧잘 점심을 거르기도 한다.
매일 오후3시면 어김없이 화실로 돌아간다.오후6시부터 밤10시까지 이어지는 수강생들의 수업 준비와 작업을 위해서다.
『땀흘려 돈 벌어 맑은 정신으로 그림을 그리며 사는게 소망입니다.』밤늦은 시간 친구를 만나 재학시절「그 순수에의 열정」을떠올리며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반문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사를 붙잡고 오토바이를 수리하기도 한다.
일요일이면 애기(愛機)에 달랑 몸을 실은채 산하를 누비며 일상의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삶의 활력을 찾는다.
8월초에는 휴가를 겸해 강원도 일대로 1주일간 투어링을 다녀오기도 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남자처럼 와일드하게 보여서인지 요리등여자들이 하는 일은 잘 못할 것으로 오해해요.』 자신도「부드러운 여자」라며 수줍은 미소를 띠는 그녀의 표정에는 취미생활에 탐닉해 있는 매니어답게 여유가 엿보인다.
千昌煥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