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행동"강조한 여성행동 강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20세기 최대의 여성잔치였던 베이징 유엔세계여성회의가 막을 내렸다.화이로우(懷柔)의 삭막한 벌판에 모인 3만6천명의 非정부간조직(NGO)대표들의 열띤 토론은 정부기구 대표들의 손에 넘겨져 21세기 세계여성정책의 기본이 되는 베이징 선언과 행동강령으로 다듬어졌다.
행동강령으로 불리는「찬란한 여성헌장」은 빈곤.교육.보건.폭력.전쟁및 갈등상황.경제.정책결정.관련기구.인권.미디어.환경.여자어린이 등 12개 분야에서의 여성억압 상황 해소,남녀평등 실현을 촉구하고 있다.
앞으로 이 행동강령들은 각 나라 정부에 의해 정책화되어 이름없는 민초여성들의 삶을 뒤바꾸어 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극적으로 타결된 행동강령중 한국여성의 입장에서 특히 환영할만한 것들은 여성상속권 인정과 여성지원금 출연,여성 성생활의 자율권 인정,무급(無給)가사노동의 화폐가치 산정 등을 들수 있다.
성희롱.포르노.성적 노예.매춘 등을 철폐하기 위한 긴급대책 마련이 포함된 것 역시 성적 괴롭힘이 가정 안팎에 만연되어 있는 우리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여성상속권 인정과 여성지원금 출연은 세계 빈곤의 70~80%를 여성과 어린이가 짐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만시지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포럼에 참여했던 제3세계 여성들의「가난과 강간은 여성의얼굴을 하고 있다」는 외침이 귀에 쟁쟁하다.
「고학력 여성은 부엌으로,저학력 여성은 공장으로」라는 문장은한국여성의 딜레마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여준다.반복되는 가사노동에 보람을 찾지 못하는 중산층 주부들의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사회문제로 떠올랐다.직업과 수입에 의해 인간의 값이 정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부의 값은 헐값이다.
이런 면에서「여성의 무급노동에 대한 가치화」를 명시하고 촉구한 베이징선언은 여성의 값을 단번에 들어올릴 수 있는 지렛대가아니겠는가.이번 회의의 의미는 이같은 행동강령을 이끌어낸 것 말고도「평화와 발전.평등」의 여성적 의미를 만천 하에 명료히 보여준 데서 찾아야 한다.
안방에서의 구타.폭력.강간이 없는 상태가 진짜 평화이며 굶주림과 찌든 가난,맑은 물을 마실 수 있을 때 진정한 발전이라 할 수 있다.또한 누구나 다 일하고 누구나 다 급료를 받는 사회라야 평등은 실현된다.
1,2차 회의(냉전종식),3차 나이로비 회의(인종차별)와 달리 이번 회의는 시시콜콜한 남녀문제가 개인적 차원을 벗어나 국제회의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성희롱이나 가정내 성폭력 등 남녀간의 사적인 문제가 국제무대에 올려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그것은 남성과 국가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국제기관이 이를 끌어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문제해결이 남녀의 제로섬 게임처럼 여겨지던성대결의 양상에서 남녀화합과 인류화평의 지평으로 넘어간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필자가 NGO포럼장에서 만난 베티프리단여사 등 머리 하얀 서구의 노장 여성운동가들도 21세기 여성운동의 모델은 남녀간의 파트너십에서 찾아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었다. 베이징선언과 행동강령은 이번 회의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시작이다.17일간의 여성천하가 끝나고 모든 여성들이 다시금 가정으로 돌아가 「그때 그억압」속으로 복귀하지 않으려면 이제 남은 것은 행동밖에 없다.
『모든 행동강령중 가장 중요한 항목은 다름아닌 「행동」』이라고 선언한 거투르드 몽겔라 세계여성회의 사무총장에게 뜨거운 공감의 박수를 보낸다.
〈효성여대교수.사회복지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