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 투자도 받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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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도 투자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할 생각입니다."

미국의 대표적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의 김병주(金秉奏.40) 아시아 회장은 요즘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한미은행 지분을 씨티그룹에 팔아 들어올 자금(약 1조1500억원)을 대부분 한국에 재투자할 계획이지만, 최근 한국에서 외국자본에 대한 역풍이 드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金회장은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자본의 국적성은 큰 의미가 없다"며 "중요한 것은 누가 부가가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밝혔다.

칼라일이 2000년 말 한미은행 지분(36.7%)을 인수해 3년4개월 만에 6618억원(수익률 135%)을 벌어들인 것은 당시 투자위험이 컸던 은행을 가치가 높은 새(투자)상품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한미은행도 카드대출 등 개인금융이 급팽창하는 과정에서 위험관리가 일부 미흡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말했다.

金회장은 칼라일펀드를 한국에 토착화한다는 구상이다. 대부분의 외국 금융회사가 아시아본부를 홍콩에 두고 있지만, 金회장은 칼라일 아시아본부를 서울에 세웠다. 그만큼 한국시장의 잠재력을 크게 보기 때문이다.

金회장은 한국 정부의 사모펀드 육성정책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 그는 "사모펀드는 하나의 자본(지주회사)이 여러 업종의 다양한 회사를 거느린다는 점에서 한국의 재벌시스템과 매우 비슷해 한국에 잘 접목될 것"이라고 말했다. 金회장은 "정부가 사모펀드 육성에 나서면 한국 자본이 외국 사모펀드에 투자하기 쉬워질 것"이라며 "한국인들도 칼라일에 돈을 맡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산업자본이 은행에 투자할 수 없도록 만든 역차별 규제도 차제에 풀려야 한다"고 말했다.

金회장은 사모펀드를 '스마트 머니'라고 부른다. 일시적으로 경영난에 처한 한계기업에 대해 위험요인과 기회요인을 철저히 분석해 회생의 길로 끌어냄으로써, 높은 투자이익을 얻고 경제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金회장은 현재 투신.증권.생보사 등 금융회사와 통신.방산업체, 제조업체를 놓고 어디에 투자할지 저울질하고 있다. 투신사 인수에 대해선 "비효율적 판매조직을 과감하게 정비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판매조직의 구조조정 가능성을 먼저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金회장은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나오고 샐러먼스미스바니.골드먼 삭스 등 유명 투자은행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는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막내 사위로, 대학시절 지인의 소개로 부인을 만났다고 했다. 金회장은 국제금융시장에 정통한 서구적 사고방식의 인물이지만 '한국적 정서'의 중요성도 잘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총자산이 175억달러(약 21조원)에 이르는 칼라일그룹은 지역별 투자자금을 한 나라에 40% 이상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지만 한국만큼은 예외다. 金회장의 주장에 따라 아시아지역 운용 자본의 50%를 한국에 투입하고 있다. 金회장은 지난 1월부터 칼라일그룹 본부의 3인 운영위원회(부회장급) 멤버를 겸하고 있다.

김광기.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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