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폐쇄 딛고 흑자…이것이 '기업가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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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비철금속 제조업체인 이구산업의 손인국 사장은 지난주 소액주주가 보낸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예기치 못한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손사장의 눈 시울은 금세 뜨거워졌다.'장기 조업중단 사태 등으로 경영환경이 어려웠는데도 경영진이 직접 발로 뛰어 회사를 잘 이끌었다'는 요지의 편지였다.

실제로 이구산업은 지난해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겪었다. 노조가 설립됐고 바로 파업사태가 빚어졌다. 내수 불경기 등으로 고전하던 회사에는 날벼락이었다. 특히 여러 차례의 노사 협상이 깨져 회사는 결국 직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문이 닫히고 생산라인이 넉달 동안 멈추면서 국내 고객들의 동요가 일어났다. 주식 값도 맥을 못 췄다. 이때 손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중국.대만 지역 업체를 쫓아다녔다. 단골 업체들에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외국 업체의 문전박대도 적지 않았지만 그것만이 회사를 살리는 길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회사는 장기간의 직장폐쇄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내는 성과를 올렸다. 물론 매출과 당기순이익 규모는 전년에 비해 크게 줄었다. 매출은 17% 떨어져 340억원에 그쳤다. 당기순이익은 70%나 줄었다. 손사장은 그러나 경영부진의 원인을 파업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는 지난 19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원인이 어디에 있든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주주들에게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또 속죄의 뜻으로 대주주의 배당 몫을 줄였다. 소액주주들에게는 주당 500원을 주고 대주주들에겐 400원씩 줬다.

이구산업은 틈이 벌어졌던 노사관계가 점차 안정되고 있다. 제3공장 건설도 순조로워 제2도약의 채비를 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 포승공단에 건설 중인 새 공장이 올 하반기 생산을 시작 하면 연간 생산량은 세배로 늘어난다. 안산지역 두개 공장을 포함해 연간 6만t의 동 압연 제품을 생산한다.

손사장은 "무노조 전통이 깨져 아쉽지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면도 있다"며 "노조 일각에선 새 공장이 완공되면 안산지역 공장의 처분을 걱정하지만 그것은 기우"라고 잘라 말했다. 이구산업의 올 매출목표는 700억원이다. 당기 순익도 60억원을 낼 계획이다.

◆이구산업=1968년 국내 처음으로 설립된 동 압연 업체다. 덩어리 형태의 동을 녹인 뒤 이를 눌러 철판처럼 생산하는 곳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동 생산업체인 풍산보다 1년 빨리 문을 열었다. 철 도매업을 하던 손정환 회장이 창업자다.

압연 기술이 뛰어나 반도체 리드프레임과 납성분이 안 들어간 수도관 소재 등과 관련한 여러 특허를 갖고 있다. 학력과는 관계없는 승진 시스템을 갖춰 현장 사원 출신이 계열사의 사장자리에 있다. 빚이 한푼도 없을 정도로 견실한 회사로 꼽혔다. 포승공장 건설 투자비를 빌리는 바람에 빚이 생겼지만 부채비율은 60%(자본금 대비)에 불과하다. 이 회사가 만드는 동 제품은 주로 자동차부품과 전자.전기부품의 소재로 사용된다. 두께가 0.04mm인 압연 제품은 휴대전화부품 소재로 쓰인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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