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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커서 못 들어온다고? 그럼, 부두가 움직이지 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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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컨테이너 항구. 화물선 한편에서만 화물을 내리고, 초대형 화물선의 경우 접안 시설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앙포토]

세계 유수의 선박회사들은 컨테이너 1만5000개를 한꺼번에 실을 수 있는 초대형 화물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 화물선은 길이 약 480m, 폭 65m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보다 거의 두 배나 더 크다. 선박회사들로서는 배를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배를 정박시키고 하역할 부두를 제대로 갖춘 곳이 많지 않다는 점 역시 고민이다.

한국해양연구원 항만·연안공간연구사업단 채장원 박사팀이 그런 초대형 화물선도 정박시켜 화물의 선적과 하역을 척척 할 수 있는 이동식 부두를 개발하고 있다. 이미 기본설계를 마무리하고, 올 9월 축소 모형의 현장실험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안정성과 성능시험을 거쳐 내년 말 상용화에 들어갈 계획이다.

◇배 있는 곳으로 위치 이동=지금의 부두는 배가 들어간다. 부두가 전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해양연구원은 가변식과 기동식 두 가지의 이동 부두를 개발 중이다. 가변식은 부두의 접안 공간을 벌렸다 좁혔다 하며 이동한다. 배가 들어와 고정된 부두에 접안하면 가변식 이동 부두가 다가가 배의 다른 한편에 또 하나의 부두를 만드는 방식이다. ㄷ자 형태의 부두 안에 배가 들어오고, 한쪽을 이동하는 것이다. 이는 초대형 화물선이 들어오면 정박 공간을 넓힌 뒤 배 양쪽에서 화물을 처리하도록 설계했다. 초대형 화물선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작은 화물선 두 대를 접안시킨다.

기동식은 어느 한쪽도 고정되지 않은 이동 부두다. 부두가 배를 찾아간다. 이는 일반 컨테이너선의 화물 처리에 활용할 수 있다. 이 역시 배 양쪽에서 화물을 처리하기 때문에 물류 처리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연구팀이 개발 중인 기동식 부두의 크기는 가로 480m, 세로 160m다.

기동식 이동 부두는 이렇게 활용된다. 화물선이 부두로 들어와 접안하면 부두가 서서히 움직여 배 옆에서 멈춰 위치를 고정한다.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 때 부두가 다른 곳으로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바다 속에 받침대를 내려 고정시킨다. 그런 뒤 기동식 부두 양끝에서 기동식 부두와 고정식 부두를 연결하는 임시 다리를 걸친다. 이 다리를 통해 컨테이너를 실어나를 차들이 드나들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채 박사는 “기동식 부두가 양끝의 다리만으로 고정되면 가장 좋지만 안정성을 고려해 기둥을 바다 밑으로 내려 고정하는 방법을 사용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두 가지 이동식 부두는 화물선의 크기에 따라 자유롭게 배의 정박 공간을 벌렸다 좁혔다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항구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화물선 양쪽에서 선적과 하역=현재의 부두 시설은 화물선의 한쪽에서만 선적 또는 하역을 한다. 대형 화물선의 경우 화물 처리에 며칠이 걸린다. 그러나 이동식 부두를 활용하면 그 절반 이하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말이다. 이동식 부두는 화물선 양쪽에서 화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식 부두는 일반 부두와 마찬가지로 화물을 쌓아놓고 분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보통 컨테이너 1700개만큼의 넓이를 만들게 된다. 무거운 컨테이너는 배 밑에 싣고, 행선지도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두 건설 쉬워=이동식 부두는 불리한 항구 입지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조석 간만의 차가 큰 곳이나 지반이 단단하지 않은 곳에도 쉽게 설치할 수 있다. 비용도 신설 부두 건설비용의 10% 정도면 가능하다는 게 채 박사의 말이다. 이동식 부두의 경우 부두의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유지 관리가 쉽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 해군의 경우 차세대 해상기지로 이동 부두의 기술을 활용하려 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이동 해상기지는 최대 길이 2㎞, 폭 150m로 태풍이 불 때도 화물기 이착륙이 가능하고, 선박이 접안할 수 있다. 유사시에는 300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할 수도 있다. 수명은 40년이며, 웬만한 바다에 설치가 가능하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도 초대형 이동식 부두를 개발 중이다. 길이 1190m, 폭 240m로 한국해양연구원이 개발하고 있는 것보다 길이가 두 배 이상 길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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