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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컬럼>프로와 장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어느 광고회사 직원들이 『프로의 눈물엔 맛이 있다』라는 직업애환서를 펴냈다.역시 프로 운운하는 제목의 어느 여성 카피라이터가 쓴 책을 본 적이 있다.입사는 어떻게 했고,부서 배치는 어떠했으며,선배는 누구누구를 만나 무엇을 배웠다 는 등 시시콜콜한 내용이었다.
광고인들이 전문 직업인을 뜻하는 프로를 자신들의 대명사인양 흔히 쓰는 것을 보면 고소(苦笑)가 인다.그들은 자본주의적 첨병정신이야말로 바로 프로정신의 요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사실 모든 직업인은 프로다.
프로라는게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전문성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 전문성 정도에 따라 더 프로적인 직종과 덜 프로적인 직종으로 나눌 수는 있겠다.
『체험,삶의 현장』이란 인기 TV프로가 있다.각 분야의 프로인 유명인사를 소위 3D직종의 현장으로 데려가 「곤욕」을 맛보게 하는 내용이다.
노동의 고단함과 신성한 가치를 공유하자는 의도여서 그 곤욕은당사자나 시청자 모두에게 즐거 운 체험이 된다.실수연발로 허둥대는 출연자들을 보면 가령 석탄캐는 일이,그물 올리는 일이,인분을 수거하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한다.그들도 프로인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스스로를 프로라 말하지 않는다.그들 에게 수사(修辭)란 한갓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프로정신 대신 장인(匠人)정신을 이 시대 직업인들의 화두로 올리면 어떨까.프로라는 말에는 아무래도 돈냄새가 난다.돈이나쁘다는게 아니다.돈과 명예는 결과적 부산물일 뿐 최고 경지를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장인정신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덕목인 헌신성을 가르친다.
최근 문화계에서 언뜻 생각나는 몇몇 인사는 그런 점에서 장인정신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소설가 조정래씨는 취재.집필기간이 15년에 이르는 2백자 원고지 3만5천여장 분량의 『태백산맥』과『아리랑』을 끝내고 탈진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한국사회경제사 연구의 거목인 연세대 김용섭교수는 연구논문만으로 7권의 저작집 출간에 들어갔으나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부질없다며 사양했다.영화감독 임권택씨와 소설가 이청준씨는『서편제』로 만나자마자 죽마고우처럼 의기투합,지금 새 영화 『축제』를 함께 만들고 있다.
곳곳에서 이런 장인들이 이 나라를 풍요롭게 하고 있는데 나라살림을 조정.통합해야 할 정치권은 어떤가.보이느니 싸움질이요,들리느니 검은 돈 추문이다.도대체 언제 건달정치가 사라지고 장인정치가 오려는가.
〈李憲益기자.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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