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네시아군도와 핵실험-프랑스 30년간 175차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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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그린피스를 비롯한 세계 환경단체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프랑스領 폴리네시아 주둔軍총사령관인 필리페 외베르트 해군중장이29일 무루로아 환초(環礁)에서의 지하核실험 강행을 재확인함에따라 남태평양 해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무루로아.타히티 거주민들의 반발 또한 더욱 거세지고 있다.이들은 핵실험 반대도 반대지만 이 기회에 아예 독립을 쟁취해 강대국의 단골 핵실험장으로 유린된지상낙원을 되찾고 영원히 핵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욕에 차 있다.
[ 편집자註] 무루로아.타히티등 프랑스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이 감격의 붓끝으로 화폭에 담았던 南태평양상의 평화로운 낙원,폴리네시아군도와 남태평양이 핵실험장으로 전락하게 된 사연은 19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2년 프랑스가 타히티를 보호령으로 만든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1백50여년에 걸쳐 美.英.佛등 강대국들이 남태평양에산재한 섬들을 차례로 식민화한 것이다.
원시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해오던 이 섬들은 제2차 세계대전중 대부분 일본군의 점령으로 한 차례 격랑에 휘말리지만 이것은 전주곡.정작 이 섬들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주민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위협받기 시작한 것은 전후(戰後)일본군이 점령했던 군도들을 美.英.佛등 강대국이 분할 점령하면서부터다.
프랑스의 경우 核억지력만이 자주독립의 첩경임을 절감한 샤를 드골 당시 대통령이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식민지에 「죽음의 재」를 쏟아내는 핵실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프랑스는 60년 당시 식민지였던 알제리내의 사하라사막에서 최초로 핵실험을 한 후 62년 알제리가 독립하자 핵실험장을 남태평양상으로 옮긴다.그후 66년7월 첫 핵실험을 시작으로 92년프랑수아 미테랑前대통령이 핵실험 중지를 선언하기 까지 무루로아.타히티등 폴리네시아군도의 두 환초에서만 무려 1백75회의 핵실험이 실시됐다.
프랑스 정부는 무루로아 등지에서 핵실험을 지속하려는 이유로 ▲인구밀도가 낮고 ▲본토에서 실시하는 경우와 비교해 지하핵실험의 충격파로 인한 피해가 적으며 ▲현지의회가 핵실험 재개에 동의하고 있음을 들고 있다.
그러나 현지주민들의 말은 다르다.
그렇지않아도 30년 가까이 단골 핵실험장이었던 무루로아와 타히티 지역 주민에게 암과 각종 장애질병이 다발하고 있는 것은 물론 환경및 생태계의 파괴로 전통적인 삶과 농어업 위주의 산업형태마저 와해될 지경이라는 것이다.
폴리네시아 인근 남태평양에서는 프랑스 외에도 美.英등 강대국의 핵실험이 무자비하게 이뤄지고 있다.
영국의 경우 호주(濠洲)남부 맬러링거와 영국領 크리스마스섬에서 한동안 핵실험을 하면서 원주민과 토양에 방사능 오염 피해를보게 했다.
미국은 과거 마셜제도의 비키니섬에서 실시한 원폭(原爆)및 수폭(水爆)실험으로 인해 주민들이 암등 각종 난치병이환과 어업피해등의 보상을 요구하자 92년 마셜제도가 독립한 후부터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尹在錫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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