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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소리 휘몰이잡가 보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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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노랫가락에 들썩들썩 흥이 겹다. 서먹한 감정은 구성진 우리가락에 어느새 녹아내렸다. 신바람 탄 민요가 시작되자 어깨춤이 절로 난다.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판이 벌어진다. 경기소리 휘몰이잡가 보존회 회원들이 치매노인 요양시설 행복의 집을 찾은 날이다.

"이성희씨 본격 계승
복지시설 돌며 위문 공연 덩실덩실"


   지난 14일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에 위치한 행복의 집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빗어 넘긴 쪽머리에 한복까지 곱게 차려입고 장구며 소고를 든 이들. 바로 경기소리 휘몰이잡가 보존회(이하 보존회)의 회원들이다.
   경기 휘몰이잡가는 1860년대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일대에서 불려 지기 시작한 소리다. 바르게 앉은 자세로 긴 가사를 빠르게 엮어 이름대로 ‘휘몰아’부르는 게 특징. 현재 ‘맹꽁이 타령’ ‘기생타령’등 10마당이 전해진다.
   보존회는 휘몰이잡가 예능보유자이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1호인 이성희(66·고양시 덕양구 토당동)씨에 의해 지난 1999년 설립됐다. 중학생 시절 논둑길에서 우연히 듣게 된 민요가락에 빠져들어 지금껏 50년 소리인생을 살아온 이씨. ‘양반가문에서 웬 광대놀음’이냐며 불같이 화를 내시던 아버님도 소리에 대한 이씨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1983년 스승인 고 이창배 선생이 세상을 뜨자 14년간 모든 것을 전수받은 수제자인 이씨는 본격적인 계승에 나섰다.
   수시로 무료강좌와 공연을 열어 소리를 알렸고, 보존회를 만들어 문하생을 키워냈다. 연 1회 정기공연은 물론 지역의 다양한 행사에 나섰다. 6년 전부터는 고양시의 복지시설을 돌며 위문공연을 벌이기 시작했다.
   중풍·치매로 문화공연은 커녕 집 앞 출입도 쉽지 않은 행복의 집 노인들에게 보존회의 방문은 모처럼 반가운 이벤트다. 성경애(54·여) 행복의 집 원장은 “(입소 노인들이)연세가 있으신 만큼 우리가락을 너무 좋아 하신다”며 “이곳 노인들에겐 여간해서 접하기 어려운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회원들이 갖는 보람도 크다. 보존회 회원 강은숙(51·여·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씨는 “복지시설 공연을 수년 째 해오면서 어려운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잠시나마 흥겨워 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우리 것을 지켜가는 내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달 부터 시작된 보존회의 복지시설 위문공연은 4월 내내 이어진다. 23일 열매마을, 28일 벧엘의 집, 30일 샬롬의 집 공연이 줄줄이 계획돼 있다. 대부분의 공연을 회원들이 사비를 털어 진행하다보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리 없다.
   이 씨는 “많은 이들이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고 있지만 막상 ‘내 일’로 중히 생각하진 않는다”며 “훌륭한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고 맥을 이어가는 일에 지자체와 정부도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우리소리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보존회를 찾아 문하생이 될 수 있다. 문의 031-966-3656

프리미엄 이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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