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돌아온 멀더와 스컬리 … 스토리는 ‘비밀 금고’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X-파일’이 새 영화로 돌아온다. ‘X-파일’은 1993년 처음 등장해 전 세계적으로 컬트적 인기를 누리며 장장 9년간 이어진 TV시리즈다. 그사이 한 차례 영화(‘X-파일:미래와의 전쟁’·98년)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TV시리즈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새 영화는 TV시리즈가 끝난 뒤 6년 만의 재등장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었던 올 2월, 캐나다 밴쿠버 외곽의 제작 현장을 찾았다. 한때 정신병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한 촬영장에서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와 스컬리(질리언 앤더슨), 감독 크리스 카터 등을 차례로 만났다.

◇파일만큼이나 비밀스러운 제작 과정=TV시리즈‘X-파일’은 외계인의 지구인 납치를 비롯, 온갖 초자연적 현상을 미국 정부가 감추려 한다는 음모이론을 곁들여 흥미진진하게 그려 냈다. 한국에서도 당시 PC통신에 다양한 ‘X-파일’동호회가 만들어지고, 멀더·스컬리의 한국어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이규화·서혜정)까지 스타덤에 오르는 새로운 현상을 낳았다.

새 영화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예상한 듯, 제작진은 구체적인 내용을 극도의 보안에 부치고 있다. 모든 스태프와 출연진에게 함구령을 내린 것은 물론, 총 6부뿐인 영화의 대본 역시 영화사 금고에 보관 중이다. 심지어 주연배우 앤더슨조차 “감독의 컴퓨터를 통해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다”고 전한다. 앤더슨은 첫 느낌에 대해 “(주연배우인) 내가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굉장히 초현실적이고 묘했다”며 충격을 전했다. 정작 구체적인 내용은 일절 언급을 삼갔다.

이런 비밀주의 때문에 인터넷에는 이 영화의 다양한 가제까지 나돌았다. ‘던 원’(Done One)도 그중 하나다. 감독은 “시나리오 맨 뒤에 ‘다 썼다’(Done)고 한 뒤, 수정 과정에서 ‘1’(One)이라는 숫자를 붙인 게 그렇게 알려졌다”고 전했다.

최근에 확정된 제목은 ‘X-Files:I WANT TO BELIEVE’(나는 믿고 싶다·한국어 제목은 미정). ‘진실은 저 너머에’(The Truth is out there)와 함께 TV시리즈 시절부터 ‘X-파일’의 핵심을 담은 문장이다. 극도의 보안 유지에 대한 이유를 묻자 감독은 “미스터리 영화인데, 미스터리가 누설되면 관객의 관람 체험이 훼손될 것”이라고 답했다.

◇X-파일의 아버지가 감독으로=크리스 카터는 TV시리즈 시절부터 제작·각본·연출을 번갈아 맡으면서 ‘X-파일’의 세계를 만들어 온 주역이다. 첫 영화(시나리오)와 달리 이번에는 그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멀더가 책상 위에 늘 해바라기 씨를 두고 씹어 먹는 습관은 다름 아닌 카터 자신의 모습이다.

이번 시나리오는 그의 오랜 단짝이자 기자 출신인 프랭크 스포니츠와 함께 썼다. “귀신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는 스포니츠의 말은 멀더와 달리 냉철한 이성을 앞세우는 스컬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두 사람은 멀더-크리스 카터, 스컬리-프랭크 스포니츠라는 도식을 부정했다. 카터는 둘의 공동 작업에 대해 “비밀스러운 과정을 거친다”며 “때로는 텔레파시가 통하는 듯한 경험”이라고만 밝혔다. 온갖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면서도 공포물과 거리를 두는 입장도 여전했다. 카터는 “나는 공포영화도, 피(blood)도 싫어한다”고 말했다.

역시나 가장 큰 관심은 6년 만에 재등장하는 영화가 새로운 세대의 관객까지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감독은 9·11 테러를 거론하며 “사람들이 또 다른 의심과 불안을 경험했다”며 이 영화가 단순히 예전 팬들의 향수에만 호소하지는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제작진의 비밀주의가 또 하나의 거대한 ‘떡밥’인지 여부는 개봉 즈음에야 확인될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7월 말, 한국에서는 9월 초 개봉 예정이다.

밴쿠버=이후남 기자



“이번 영화는 TV시리즈와 진짜 달라”
‘멀더’역 데이비드 듀코브니

숨가쁜 촬영 일정 탓에 데이비드 듀코브니(48·사진)와 만난 것은 오전 2시가 넘어서였다. 그는 생생한 표정으로 다시 ‘멀더’가 된 소감을 들려 줬다.

-TV시리즈 막판에 출연을 그만뒀다.

“당시 1년에 10개월을 촬영했다. 그렇게 5, 6년을 넘어서자 지쳤다.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영화는 촬영 기간이 3개월이다. TV시리즈였다면 다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리즈는 완성도가 높았다.

“당시로서는 제작비를 가장 많이 들인 TV시리즈였을 것이다. 웬만한 영화로는 그 수준과 이야기의 재미를 능가하기 힘들다.”

-영화의 액션은 주로 당신 몫이라던데.

“액션은 배우로서 지루한 장면이다. 기본적으로 일종의 안무다. 액션과 섹스는 (배우에게) 가장 바보스러운 장면이다. 실제가 아니라 그런 척을 하는 것이다. 물론 감독은 추격전을 찍을 때, 내가 정말로 최선을 다해 달리도록 시켰다.”

-다시 멀더를 연기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불과 며칠 쉰 것 같았는데, 촬영 첫날 그런 생각이 바보스러웠다는 걸 깨달았다. TV시리즈가 처음 나온 1993년부터 마지막 시리즈까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시청자에게 멀더는 계속 같은 멀더였다. 같은 멀더를 새롭게 보여 줘야 했다.”

-멀더는 여전히 강박적인가.

“그게 이 인물의 핵심이다. ‘나는 믿고 싶다’(멀더의 방에 걸려 있는 포스터의 문구)라는 사람이다. 쉬지 않고 추격하고 조사한다. 이게 그의 뛰어난 점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이 영화가 TV시리즈와 독립적인 이야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첫 영화(98년)는 두 개의 시즌을 연결하는 에피소드 같았다. 당시 언론에 시리즈와 다르다고 얘기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웃음) 이번에는 진짜다. 새 캐릭터를 소개해 시리즈를 보지 않은 관객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기존 팬들도 피로감을 느끼지 않도록 시나리오를 잘 썼다. ‘양들의 침묵’처럼 액션과 스릴러와 캐릭터가 두루 빼어난 영화였으면 한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나.

“내 대답은 항상 같다. 이 우주에 우리(지구인)만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른 존재가 없다면 놀랄 것 같다.”

-감독은 9·11 테러 이후의 의심과 불안이 영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던데.

“멀더는 누군가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을 좇는 인물이다.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하려고 한다. 그런 기본적인 점은 바뀌지 않는다. 그게 ‘X-파일’의 핵심이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