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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창극칼럼

사춘기 무사히 넘긴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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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미 갈등을 연구했던 사람으로서 캠프 데이비드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남다른 감회가 있다.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를 지켜보면서 썼던 학위논문의 말미는 이렇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한·미 관계의 기본 골격은 동서 냉전에 따른 안보 협력이었다. 이제 탈냉전 시대를 맞아 두 나라 관계가 과거처럼 지속되려면 안보를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협력이 창출되어야 한다. 이는 정치·경제·문화·사회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이 과거 안보 협력을 대신할 수 있게끔 강조되어야 한다.”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한·미 관계의 기본적 토대는 미·소의 대결이라는 국제적 구조였는데 이것이 변한 마당에 한·미 관계를 어떻게 새로 설정하느냐가 당시의 고민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선언한 ‘21세기 전략동맹’은 바로 그러한 필요성에 대한 응답이었다. 하나의 생각이 현실로 전환하는 데는 근 한 세대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미 관계의 변화를 보면 사람의 성장 과정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탄생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결과였다. 소련 관할이 된 북한과 비교할 때 우리가 미국의 관할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지금 보면 행운이었다. 물론 앞 세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지만 우리의 번영과 민주주의는 미국에 힘입은 바 크다. 미국 없는 현재의 한국은 생각할 수 없다. 유아기의 한국은 미국에 젖을 더 달라는 젖먹이 같았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한국 정부의 관심은 미국으로부터 얼마나 원조를 받아내느냐였다. 나의 세대는 누구나 구호물자의 아픈 추억이 있지만 50년대에서 60년대 중반까지 미국 원조는 우리 국민총생산(GNP)의 10% 정도에 이르렀다. 안보 역시 한·미 방위조약이라는 명분으로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 있었다. 두 나라는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였다. 박정희는 이러한 한국에 대해 “독립 국가이면서도 통계상으로 한국의 실가치는 48%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발언권은 52%를 차지하고 우리는 그만큼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국가와 혁명과 나』)라고 말했다.

유아기를 지난 한국은 자기 발로 서려고 노력했다. 공업화의 시작이다. 우리 상품의 주 소비처는 미국이었다. 신발·컬러TV·앨범·완구 등 미국 시장이 우리 수출의 50%를 차지했다. 80년대 중반까지 한국 제조업 근로자 350만 중 4분의 1이 미국 수출과 직접 연관이 있었다. 이러니 미국에서 한국 상품에 대한 수입제한 얘기가 나왔다. ‘수퍼 301조’는 우리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이런 시련 속에서 한국은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어느 정도 성장한 한국은 사춘기를 맞았다. 사춘기의 한국은 미국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졌다. 지난 10년이 그런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어른이 되어가는 한국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한국 대통령이 “반미 좀 하면 어때” 할 정도가 되었다. 미국을 벗어나 ‘동북아 균형자’ 노릇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주변 강대국 누구도 한국을 그런 나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성장기에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제야 온전한 성인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기의 이유 없는 반항 때문에 일생을 망치는 그런 나라를 넘어섰다. 자기의 책임하에 살림을 꾸릴 수 있으며 주변 사정도 돌아볼 줄 아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야 철이 들어간다고나 할까. 그런 결과가 이번 ‘전략적 동맹’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논문 결론 부분을 다시 인용하면 “동서 대결이 끝나 한·미 동맹관계의 골격을 이루던 부분도 사실상 소멸됐다. 이제 동맹의 논리도 다시 세워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 대해 영토적 야심이 없었던 유일한 국가가 미국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균형자 역할은 우리에게 긴요한 것이다.”

한·미 관계가 더 이상 허물어지지 않고 이렇게 확대 복원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60년이라는 양국의 역사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국익의 입장에서 우리는 미국이 필요했고 미국 역시 한국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궂은 날도 참고 기다릴 수 있었다. 연륜이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이번 회담 결과를 놓고 한국의 부담이 늘어날 것을 걱정하는 소리가 있다. 일종의 피해의식이다. 그러나 “약소국이었던 우리가 미국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식의 논리는 핑곗거리는 되겠지만 나라를 바로 세우지 못한다. 먼저 스스로가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 미루려는 자세로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 종속이론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남의 탓’을 강조한 데 있다.”(졸저:『한미 갈등의 해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몫을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미국에 기대려고만 해서는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없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