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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형대한민국CEO] 혈당 측정 3초면 끝 … 로슈·존슨&존슨도 제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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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며칠 전 경기도 안양의 아파트형 공장 동일테크노타운에 자리 잡은 인포피아를 방문했다. 인터뷰 시간이 됐지만 회의실은 빈 곳이 없었다. 배병우(45·사진) 사장은 “요즘 사람이 너무 많이 찾아온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12년 전에 회사를 세웠지만 그는 지금껏 제대로 된 자기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차량도 개인 명의다. 운전기사도 없다. 그는 “조금이라도 개인적인 용도라면 회사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게 내 소신”이라고 말했다. 잘나가는 바이오 벤처 사장이지만 그에게선 ‘거품’을 찾아볼 수 없다.

인포피아는 휴대용 혈당측정기와 여기에 꽂아 사용하는 바이오 센서를 만든다. 2005년 매출이 100억원을 넘어섰으며 지난해엔 300억원대에 들어섰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84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27%에 달했다. 배 사장은 “올해 매출은 지난해의 두 배에, 영업이익률은 30%를 넘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주무대는 한국이 아니다. 지난해 매출의 90%를 해외에서 올렸다. 수출 국가는 미국부터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55개국에 이른다. 고작 14명의 직원으로 5개의 해외영업팀을 가동하고 있다. 배 사장은 “혈당측정기를 판매하기 시작한 2002년부터 해외시장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경기에 민감한 데다 국산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경쟁업체들은 로슈·존슨앤존슨·애벗 같은 글로벌 제약회사들이다. 인포피아는 지난해 혈당 측정 속도가 3초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제품을 출시하며 경쟁사들을 긴장시켰다.

해외시장 개척 초기엔 어려움도 많았다. 대만 제품은 가격이 20~30%나 낮았다. 배 사장은 “품질에 대한 자신감으로 밀고 나간 전략이 통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제품보다 비싸다고 말하는 바이어들에겐 직접 대만 회사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건네주며 “그 회사 제품을 써보고 다시 오라”고 말했다.

서울대 제어계측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대정공 연구원 출신이다. 대기업이 생리에 맞지 않아 서른두 살 때인 1994년 회사를 그만뒀다. 퇴직금 1000만원으로 양재동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20만원의 사무실을 냈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제어계측기를 만들며 회사를 꾸려나갔다. 하지만 곧 외환위기가 닥쳤다. 그는 “거래처가 부도나는 바람에 6개월 넘도록 직원 월급을 못 준 적도 있다”며 지금까지 함께 일해온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의료기기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이 분야의 대부로 불리는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의 조언 덕이었다. 그는 배 사장에게 “제어계측 기술을 활용해 의료기기를 만들면 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 사장이 처음 손을 댄 것은 종합병원에서 사용하던 생화학 분석기. 환자들의 혈액을 종합 분석하는 첨단 의료기기다. 1년 가까이 애쓴 끝에 한 대에 3000만원이 넘는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름 없는 중소기업이 만든 기기를 종합병원이 받아줄 리 만무했다. 배 사장은 “시장이 없으면 어떤 첨단 기술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 뒤 눈을 돌린 곳이 당뇨 관련 제품이다. 배 사장은 “이쪽은 세계시장 규모가 8조원에 이르고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며 “기술개발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덤벼들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는 “혈당은 물론 간 수치, 심장질환, 나아가 암까지 진단하는 ‘휴대용 종합진단 세트’를 개발해 가정마다 공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글=손용석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안윤수 기자


※이 시리즈는 중앙일보와 자매지인 이코노미스트·포브스코리아 공동 기획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24일 발매되는 포브스코리아 5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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