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특파원 간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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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19일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및 검증 문제와 관련, "미국 행정부가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이 시간에 쫓겨 (북한 핵 프로그램 신고에) 절차상 하자가 있더라도 그냥 진행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으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속단"이라며 "6자회담이 적당한 신고, 적당한 검증과정을 밟고 넘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남북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언급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성사시킨 남북정상회담을 은근히 비판했다. 그는 "임기 말에 남북 정상회담을 서둘러서 하고, 시급하게 합의서를 만들고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평소에 대화해야 한다"며 "정상들이 늘 만날 수도 없으니 연락사무소를 두고 정말 성실하게 서로 도움이 되는 대화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 의회 일각에서 나오는 한·미 FTA 협정문 중 자동차 분야 재협상 요구와 관련, "자동차 건으로 다시 조정할 내용이 없다"며 "한국에도 FTA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듯 미국 의원들도 정치적으로 주장하는 것인 만큼 이 문제는 토론할 일이 아니고, 의회에 상정해 가부를 결정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양국 간 신뢰관계가 소홀히 됐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더욱 강화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대통령 모두 발언과 특파원과의 일문일답.

◇모두 발언

"부시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임기 안에 통과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부시 대통령은 또 한국의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 가입이 연말 이전에 현실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현재 2만 8500명인 주한 미군을 올해 말까지 2만5000명으로 줄이기로 돼 있었다. 3천500명이 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 방위력이 크게 약화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로 (미) 공군 쪽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므로 우리 국방부에서 많이 걱정했으나 오늘 부시 대통령과 현 숫자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현재의 방위력을 축소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이번에 여러 측면에서 한·미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양국이 모든 정보를 교환하고 사전과 사후 서로 협의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고 생각한다."

◇질문·답변

-미국에선 내년에 새 정부가 출범한다. 한·미 관계를 강화할 복안은 뭔가.
"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세 대선 주자가 긴 편지를 통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모두 한·미 관계가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양국 관계 강화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어느 당의 어떤 후보가 당선돼도 한·미 관계는 (한국의 과거 정권이) 지금까지 부시 정부와 맺은 것보다 강화될 것이다. 이번에 (미국) 대선 주자들을 만나지 않았지만, (한국에) 가서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미 관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미국 의회 일각에서 자동차 문제를 언급하며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FTA는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GM의 부회장도 FTA 지지발언을 했다. 미 의회를 설득하는 건 미 행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FTA와 관련한) 다른 협상은 없다."

-북한은 남북연락사무소 개설을 거부해 왔는 데 그걸 제의한 이유는.
"북한이 과거에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바른 생각이면 계속 설득하는 게 옳다. 남북관계가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평소에도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올해 내가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를 5번 정도 만날 예정인데, 남북 간에 못 만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게 내 지론이다. 자연스럽게 만나야 한다. 정상들이 늘 만날 수 없으니까 양쪽에 연락사무소를 두면 좋지 않겠느냐.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북한이)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판단하는가. 북핵 문제가 부분적 해결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북한에 핵이 있느냐, 있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냐는 건 확실치 않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건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보유한다는 것인데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신고·검증이 이뤄지면 정확하게 나올 것이다. 국제법상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어느 정도, 어떻게 해결되는 게 부분적 해결인지 모르지만 6자회담이 (북한의) 적당한 신고를 받고 적당히 검증하는 과정을 밟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부분적 해결을 인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해)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북·미 잠정합의를 미국 정부가 수용하면 한국 정부도 수용할 것인가.
"신고문제는 6자회담 당사국의 공동사항이다. 한국만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대표단이 내주 방북하고 돌아온 결과를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적당하게 넘어갈 것 같지 않다."

-한·미 간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과 관련해 어떤 논의가 있었나. 한국군의 아프간 파병, 미국의 핵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문제 등도 논의됐나.
"PSI 참여, 아프간 파병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이 '본국에 가서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문제는 얘기하지 말자'고 했다. 아프간 파병은 한국 정부가 논의할 입장이 아니라는 걸 미국 측이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글로벌 파트너십은 21세기 미래지향적 관계로 가자는 것이다. 한국은 안보의 보호만 받고, 경제원조만 받는 피보호국 입장이었지만 이제 우리도 경제대국이 됐다. 때문에 우리도 경제규모에 걸맞은 역할을 국제사회에서 해야 한다. 미국에 오기 전에 이미 ODA(해외무상원조) 지원자금을 올리고, PKO(유엔 평화유지군)에도 필요하면 참여하겠다고 얘기했다. 미래지향적 동맹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함께 지향하자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이번 회담을 점수로 매긴다면.
"내가 점수를 매길 순 없다. 부시 대통령이 90점 이상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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