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걷는 걸 받아들인 순간 다시 태어났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랜초에서 재활의 첫 단계로 꼽는 것은 ‘휠체어 선택’이다. 몸에 꼭 맞는 휠체어를 고르기 위해 무게뿐만 아니라, 길이와 폭까지 치밀하게 측정한다<사진上>.
말을 할 수 없는 중증 척추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접근 장치인 아이컨택 마우스. 눈의 움직임으로 커서를 움직이고 자판을 누른다<사진中>.
랜초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전문가로 거듭난 장애인도 많다. 이들은 종종 랜초에 취업된다. 이곳 스태프의 3분의 1가량이 척추 환자다<사진下>.

다리는 전혀 움직일 수 없고, 팔은 움직이지만 손을 쥘 수는 없는 장애인을 위한 차량에서 제이 크래머가 운전 연습을 하고 있다. 차 뒷문으로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 운전석으로 간다. 세 개의 고정 축에 한 손을 낀 뒤 팔의 힘으로 운전대를 돌려 운행을 한다. 나머지 한 손으론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작동한다. [LA=중앙방송]

미국 LA에서 북동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조용한 교외도시 패서디나. 그곳에는 48년 동안 수많은 가수와 코미디언을 배출한 클럽 ‘아이스 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다. 엄격한 오디션을 거치지 않으면 아이스 하우스에서 공연할 수 없다.

3일 목요일 저녁, 주말을 앞두고 손님들이 클럽에 모여들었다. 사회자가 코미디 배우 제이 크래머(33·사진)를 소개했다. 베테랑만 가능하다는 단독 스탠딩 코미디였다. 휠체어 하나가 무대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크래머는 척추장애인이다. 몇몇 관객은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관객 한 명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기습적으로 물었다. “바나나”라고 답하자 “오 이런, 내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져 이꼴이 됐잖아”라고 소리쳤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클럽의 매니저 데이브 라이니츠는 “감추지 않은 적나라함, 모든 걸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힘, 그것이 크래머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크래머의 취미는 암벽 등반이었다. 2005년 11월 크래머는 여느 때와 같이 등반에 나섰다. 그러나 로프 고리가 풀어지면서 10여m 아래 바위로 추락했다. 5번 척추가 손상됐다. 그는 무대를 꿈꾸던 단역 배우였다. 주위에서 “꽃도 피기 전에 꺾였다”고들 했다. 크래머도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랜초 로스 아미고스에서의 8주가 그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5번 척추가 ‘부분 손상’된 크래머는 반복된 물리 치료로 어느 정도 팔을 움직이게 됐다. 그는 곧바로 작업치료에 들어갔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작업치료는 컴퓨터 사용과 일상생활 적응을 위한 훈련으로 채워졌다.

랜초는 가족 같은 ‘커뮤니티’를 강조한다. 정신과 의사와 카운슬러가 재활전문가팀에 속해 있는 것도 ‘사회적응’을 강조하는 랜초의 정신을 보여준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는 “내가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거의 매일 옛 환자들이 병원을 찾곤 했다”고 말했다. 크래머는 이곳에서 연극 동호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의 무대 사진이 병원에 걸려 있다. 그곳에서 약혼녀도 만났다. 육상선수였던 그녀는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지만, 꿈을 버리지 않고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퇴원한 크래머는 지역의 유명한 클럽을 돌아다니며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크래머는 “컴퓨터 배경화면에 내가 처음 다쳤을 때 바위에 떨어진 모습, 헬기가 나를 실어 나르는 모습을 띄워놓았다. 그날 나는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스스로를 ‘리사이클(재활용) 인간’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이유다. 버린 삶이 아니라 다시 얻은 삶이라는 ‘긍정의 힘’!

긍정의 힘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영원히 걷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다치기 전에 할 수 없었던 스탠딩 코미디 배우가 됐다.”

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그의 형(40)은 “랜초 출신 사상 첫 코미디 배우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상묵 교수는 “처음 랜초에 들어갔을 때 재활을 마치면 걸어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입원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처음 전문가들이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묘하게도 희망이 보였다”고 회고했다.

크래머는 요즘 운전 연습 중이다. 아직은 악력이 살아나지 않아 힘들어한다. 그러나 다양한 보조기구가 그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 주고 있다. 팔로만 작동할 수 있는 운전대의 보조기와 가속기, 브레이크. 땀을 뻘뻘 흘리며 운전하던 그가 말했다.

“면허를 따면 혼자 클럽에 갈 수 있잖아요. 그게 희망입니다.”

강인식·홍혜진 기자, LA=김상현 중앙방송 PD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