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연의 세계 일주] 오지 여행, 그 짜릿함에 '미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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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에 미쳤다. 10여년에 걸쳐 틈만 나면 뛰쳐나가는 생활을 반복, 세계 120여개국을 돌아다녔다.

여행칼럼을 써서 비행기 삯에 보탰고, 얼마 전에는 아예 여행사도 차렸다. 이곳저곳 기고했던 칼럼을 모아 책도 냈다. 그리고 이제는 남들이 '오지 여행 전문가'라고 부른다.

그런데 실은 '오지'(奧地)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사전을 찾아봤더니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 내부의 깊숙한 땅'이란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도 오지를 '남들이 잘 안가는 미개(?)한 촌'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가?

그렇다면 내가 헤집고 다닌 곳들이 '오지'가 맞는 모양이다. 버스도 안 다니는 시골길을 굽이굽이 들어가 쇠똥으로 집을 짓고 사는 마사이 부족과 함께하기, '좁은 수로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이름도 없는 인도 시골 마을로 찾아가기 (배낭 지고 걸어가는 이상하게 생긴 동양 처녀 구경났다고 지나가던 버스가 급정거를 하더라), '문화유산 하나 보겠다'고 외국인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잠입(?)하다 창녀로 몰려 돌팔매질 당하기, 혼자 여행하는 여성을 받아주지 않는 이란이 가고 싶은 나머지 멀쩡한 게이 커플 꼬셔 가짜 남편과 시동생 역할 시키기 (싱글 룸 하나 더블 룸 하나 잡아서 호텔 매니저 몰래 방 바꾸느라 무지 고생했다)…. 이런 것들이 내 취미생활(?)이다.

오지여행에서 살아남고 싶은가? 원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쾌면.쾌식.쾌변. 지나치게 형이하학적이라고? 형이상학적인 대답을 원한다면 따로 준비해둔 것이 있다. '용기'와 '배짱', 그리고 얼굴 한 가득 담은 '아름다운 미소'다.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의 '불도저'정신이나 '깡생깡사'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우스개를 기억하라. 집 떠나면 믿을 놈(?)은 결국 내 자신뿐이니, 스스로에게 용기와 배짱이라는 최소한의 갑옷을 입혀주는 것이 예의다. 스스로를 믿어라.

'그런데 뜬금없이 아름다운 미소는 무엇이냐'고?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나는가? 나는 '행복'하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나는 드디어 남극을 정복했어!'라고, 발자국을 찍고 오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가? 남들이 찾지 않는 어려운 여행지를 다녀왔다는 것이 당신에게 커다란 성취감을 선사하는가?

여행은 하루빨리 해치워야 하는 밀린 숙제가 아니고, 합격선이 정해져 있는 시험도 아니다. 거울 속에서 퉁퉁 불은 짜증스러운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거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당신에게 선물하라. 만일 미소가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지금 당신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을 하고 있는 게다.

나는 오늘도 여행을 꿈꾼다. '버펄로 다섯마리 줄테니 시집 오라'던 보르네오 섬 50 넘은 추장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제 값 받기 힘들텐데(서른이 되어 아프리카에 갔더니 돼지 두 마리 쳐준단다).

'여성'임이 핸디캡으로 느껴진다고? 오지 여행을 결행하는 여성 여행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핸디캡이 아니라 되레 장점이다. 희/소/가/치. 생긋 미소 한번에 무임 승차도 가능하고, 애교 어린 부탁을 거절하는 무뚝뚝한 현지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딜 가나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아줌마 군단도 모두 내 편일진대, 그대는 무엇이 두려운가? 게임보다 더욱 더 흥미진진한 모험이 바로 앞에서 당신을 기다리는데!

조정연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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