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공부하면 속에서 생수가 샘솟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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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은덕문화원에서 원불교 교산 이성택 교정원장이 ‘대각개교절’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각개교절은 원불교의 최대 경절이다.

‘원불교의 생일’인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 93주년을 맞아 1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은덕문화원을 찾았다. 거기서 원불교의 행정수반인 교산(敎山) 이성택(65) 교정원장을 만났다. 앞에 놓인 찻상에는 메밀차가 놓여 있었다. 맛과 향이 구수했다.

“차 맛이 좋습니다”라며 찻잔을 놓자 이 교정원장은 ‘도자기’ 얘기를 꺼냈다. “이렇게 작은 찻잔도 발물레를 차면서 만듭니다. 아무리 작은 찻잔도 질감이 다 다르죠. 흙과 불과 바람이 섞이는 정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두 소중하죠.” 이 교정원장은 시간이 나면 직접 흙도 빚고, 가마에서 장작도 때고, 도자기도 굽는다.

그는 ‘도자기 굽기’를 ‘마음공부’에 빗댔다. “처음 가마에 불을 때면 검붉은 빛이 나죠. 그런데 장작을 집어넣을수록 불빛에서 검은 색이 점점 없어져요.”

수행도 마찬가지다. 수행이란 뭔가. 결국 ‘나’라는 에고를 녹이는 작업이다. 그러니 ‘나’를 태우고, 태우고, 태울수록 내 안의 불순물도 줄어드는 법이다. 그러니 수행자의 불빛은 갈수록 맑아지기 마련이다. 그는 “나중에는 가마 속 불길이 하얗게 타오르는 백색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장작은 어떤 걸 쓸까. 이 교정원장은 “소나무 장작을 사용한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소나무 장작은 가마 안에서 타고난 뒤에도 재를 남기지 않습니다. 재도 없이 다 연소해 버리죠. 만약 가마 안에 재가 쌓인다면 도자기를 구울 수가 없겠죠.”

수행도 같은 이치다. 내 안의 가짐과 집착, 욕망 등의 불순물을 남김없이 태워야 한다. 만약 재가 남고, 그게 또 쌓이고 쌓인다면 언젠가 나의 숨통을 막지 않겠는가.

그렇게 정성들여 구운 도자기도 여지없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공의 망치는 늘 가차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정원장의 방식은 달랐다.

“가마 속에서 일단 나왔으면 자기 자식이죠. 가마에서 나왔으니 생물(살아있는 물건)로서 나온 거죠. 사람도 선천적 장애가 있고, 후천적 장애가 있잖아요. 그래도 다 똑같은 자식이잖아요. 잘 생긴 도자기, 못생긴 도자기, 저는 모두 모아둡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죠.” 그건 잘남과 못남을 구별 없이 대하는 소중한 마음이었다.

이 교정원장이 도자기를 보는 시선에는 원불교 가르침의 핵심인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 온전히 녹아 있었다. “모든 물건과 모든 상대를 대할 때 불공하는 심정으로 해야죠. 불공이 뭡니까. 그 존재, 존재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역할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풍토와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거죠. 모두가 살아있는 부처님이니까요.”

그래서 ‘불공’은 ‘더하기’라고 했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늘 ‘1+1=2’는 아니죠. 어떤 때는 ‘1+1=0.5’가 되기도 합니다. 그건 ‘상승적 인간관계’가 아니죠. 1+1=2가 되고, 3이 되고, 4가 되는 게 바로 원불교에서 말하는 ‘불공’이죠.”

28일은 원불교의 최대 경절인 ‘대각개교절’이다. 원불교를 연 소태산(少太山·본명 박중빈, 1891~1943)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날(1916년 4월28일)이다. 이 교정원장은 “성탄절도 그렇고, 석가탄신일도 그렇고, 예수님과 부처님의 육신이 태어나신 날을 기립니다. 그런데 원불교는 다르죠. 원불교에서 대종사의 육신이 태어난 날은 아무런 행사 없이 보냅니다. 오직 깨달음을 얻으신 그날을 기릴 뿐이죠. 그게 전통 종교와 새로 시작하는 종교의 차이점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가 찬 사건도 많이 터졌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종교인의 책임이 무겁다는 걸 느낍니다. 어린이 유괴, 살해, 성추행 사건 등은 모두 인간의 정신이 쇠락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이죠.”

결국 ‘정신’이 문제라고 했다. “온전한 정신을 챙겨야 합니다. 정신을 놓치다 보니 자꾸만 외부 환경에 끌려가고, 또 거기에 매몰되죠. 자기 정신을 자기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게 큰 문제죠. 그래서 정신을 개벽해야 합니다.”

그래서 물었다. “정신을 개벽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이 교정원장은 “마음공부를 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원불교의 수행법만 ‘마음공부’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얼마 전, 원불교 재단인 원광대에 로스쿨 실사단이 왔었다. 원광대 측은 실사단 브리핑에서 가장 먼저 “로스쿨 구성원에게 ‘마음공부’를 시키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실사단은 “학생들에게 종교로 포교하겠다는 뜻이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 교정원장은 웃으며 “그게 아니다”고 했다. “마음공부의 방법은 기독교에서도 다룰 수 있습니다. 근원의 자리에서는 서로 통하니까요. 기독교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그 속에 ‘마음공부’는 이미 들어있는 것이죠. 또 그게 마음공부를 잘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불교도 마찬가지죠. 부처님의 법을 제대로 실행하면 되죠. 그럼 원불교의 마음공부도 하는 게 되고, 원불교의 법도 실행하는 게 되죠.”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은 속에서 생수가 샘솟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맑히고, 좀 더 지나면 가족과 이웃을 맑히고, 더 지나면 온 세상을 맑게 한다. “생수가 한 곳에서만 솟아나도 언젠가는 전체 우물이나 저수지가 맑아지는 법이죠. 그래서 원불교는 생수구멍입니다. 혼탁한 세상을 맑히는 일을 해야죠.”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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