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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제주도를 찾는 이들은 많지만 마라도까지 가는 이는 적다.
북위(北緯) 33도6분30초,동경(東經) 1백26도16분30초. 이 우리 국토의 맨 남쪽 끝 섬을 찾아 마흔두명의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섬을 지키고 있는지 보는 일은 분명히 감동적인체험이 될 것이라고 아리영은 생각했다.
등대 하나와 국민학교 분교 하나,사당 하나와 절 하나와 교회하나. 빗물을 받아 식수로 쓴다.
이 물을 「봉천수(奉天水)」라 부른다.
-받드는 하늘의 물? 험한 자연조건 속에서 차라리 경건히 사는 사람들의 생활자세를 엿보게 하는 낱말이 아닌가.
바닷가 현무암 위는 돌도미 낚시를 하는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일본말이 오가는 것을 보니 더러 일본인 낚시꾼도 있는 모양이다. 돌도미는 제주도 말로 「돌돔」.제주 연안 암초(暗礁) 언저리에 사는 물고기다.몸에 까만 가로띠 무늬가 일곱줄이나 있어한눈에 알 수 있다.까만 암초 사이에서는 미채(迷彩) 문양일 수 있는 이 가로띠가 수면 가까이선 거꾸로 돌돔임을 알리는 강력한 사인이 되는 것은 시니컬한 일이다.
낚시꾼들 몇몇이 아리영을 쳐다봤다.
연초록 시퐁의 팡탈롱 슈트와 같은 천 리본을 길게 맨 챙이 넓은 밀짚모자,마라도의 초록 풀밭과 얼리는 미채색 차림이었는데도 남자들은 용케 미인을 알아본다.어롱을 든 소년들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낚아올리는 순간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아리영은 얼른 그 자리를떠났다.아리영의 손을 잡은 쌍둥이 형제도 어롱소년 앞을 우쭐한몸짓으로 지났다.
『미인은 고달프시겠습니다.』 나선생의 말에 아리영은 웃었다.
『그렇지도 않아요.정작 쳐다봐 줘야 할 「하나」가 쳐다봐 주지 않아서 고달프지요.』 어려운 시 읽듯한 표정이 잠시 나선생얼굴을 스쳤다.
풀밭에 뿌리엉겅퀴가 무성히 자라나 있다.
세찬 바닷바람 탓인지 마라도의 뿌리엉겅퀴는 키가 아주 얕았다.그러나 밝은 보라색 꽃빛은 유난히 짙다.
최교수 생각이 났다.엉겅퀴를 사랑한다면서 그 꽃송이를 비롯하여 가시 돋친 잎이랑 뿌리까지 몽땅 먹을 수 있다던 여인.
독신인 그녀가 거침없이 펼친 애욕의 몸부림 소리와 울부짖음이새삼스레 아리영 귀에 쟁쟁했다.
그녀의 하얀 장화도 떠올랐다.아리영은 그 장화발에 밟혀 으스러진 엉겅퀴다.
『파도가 모래사장에 닥치는 것을 자세히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선생이 아리영의 마음을 돋우듯이 물었다.
『아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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