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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삼중 “머리카락 꼼짝마”… 불만 제로 김치에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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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집 직원들이 작업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작업복에 묻은 머리카락 등 이물을 끈끈이 클리너로 서로 떼어 주고 있다.

요즘 한쪽에선 식품의 이물 문제로 시끄럽고, 다른 한쪽에선 이소연씨의 우주여행에 열광한다. 국제우주정거장(ISS) 모듈엔 전자레인지는 있지만 냉장고는 없다.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냉장 보관이 불가능한 우주식품은 위생적으로 완벽해야 한다. 이것이 1960년대 이후 미국 육군 나틱연구소와 미 항공우주국(NASA)에 우주식품을 납품한 필스버리사가 HACCP라는 새로운 위생 관리 시스템을 개발한 배경이다. HACCP는 우리의 먹거리를 지켜 주는 안전장치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용어와 개념이 다소 어렵게 느껴져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쉽고 부드러운 ‘상대’다. 학교급식이나 가정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중앙일보 건강팀은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공동으로 ‘우리의 먹거리 지킴이 HACCP 바로알기’를 연재한다.

“HACCP를 실시한 첫해(2005년)엔 이물 등으로 인한 고객의 클레임(불만) 건수가 제품 100만 건당 64.7건이었으나 2006년엔 47.7건, 2007년엔 35.9건으로 줄었습니다. 올해는 100만 건당 3.4건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우리 회사에서 연간 1300만 개의 제품이 생산되니 이물 등 하자 제품이 55개 이하가 된다는 뜻이지요.” ‘종가집 김치’를 만드는 대상FNF 이동관 상무의 말이다.

100만 건당 불량품 3.4건이면 ‘6시그마(sigma)’가 지향하는 무결점 품질을 뜻한다. 반도체 등 공산품은 가능할지 몰라도 김치 등 농산품·식품에선 지극히 힘든 목표다. 무엇을 믿고 이런 목표를 세웠는지 ‘종가집’ 횡성 공장을 찾아가 봤다.

◇머리카락과의 전쟁=김치 제조업체가 식품 안전 시스템인 HACCP를 실시하며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머리카락과 기생충 알이다.

김치 수입·판매회사인 일본 마루큐사 후지사키 마사토 사장이 8년 전 달랑 머리카락 하나를 들고 ‘종가집’을 찾아왔다. 대뜸 직원의 DNA를 분석해 누구 머리카락인지 밝혀 달라고 주문했다. 황당한 요구였지만 음식에서 나오는 머리카락을 혐오하는 일본인의 특성상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후 이 상무는 일본의 새우 납품업체를 방문, 4명의 직원이 돌아가면서 머리카락 등 이물을 검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1년에 머리카락 2개를 잡아내기 위해 4명을 고용했다”는 사장의 말에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한다.

‘종가집’도 몇 년째 머리카락과 전쟁 중이다. 현장 직원은 머리 위에 밴드를 매고 다시 모자를 쓴다. 작업장에 들어가기 전에 작업복에 묻은 머리카락을 끈끈이 클리너로 떼어 낸다. 작업복 자체도 머리카락이 잘 달라붙지 않는 재질로 만들었다. 일하는 도중 HACCP 담당자가 ‘암행어사’처럼 살며시 들어와 작업복에 머리카락이 묻어 있는지 검사한다. 여기서 머리카락이 나오면 첫 번째는 경고, 두 번째는 시말서, 세 번째는 퇴직(삼진 아웃)이다.

한 차례 지적을 받았다는 직원 Q씨는 “한번 걸린 뒤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야외에서 청소를 한 적이 있다”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위생적인 김치를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기생충 알 사고의 후유증=2005년 11월 3일은 김치 업체엔 ‘악몽의 날’이다. 이날 식의약청은 국산 김치에서도 기생충 알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다행히 내수 시장은 한 달만에 회복됐다. 김치는 우리 국민이 한 끼도 빼놓을 수 없는 기본 반찬인 데다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본 주부들이 “배추벌레 정도는 나올 수 있다”며 너그러이 이해해 준 덕분이다.

그러나 수출 타격은 식의약청 발표 다음 날부터 2년 이상 지속됐다. ‘종가집’의 경우 식의약청 발표 전엔 대일본 수출 물량이 월 400t이었으나 발표 다음 달엔 200t으로 반감됐다. 일본에서 판매액 1위 자리를 중국산 김치에 내준 것도 김치 종주국으로서 큰 상처였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 김치에선 기생충 알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한국산이란 이유로 도매금으로 넘어갔다”며 “이 사건 이후 매달 2회씩 기생충과 기생충 알 검사를 하고 있는데 한 건도 나온 적이 없다”고 전했다.

◇HACCP를 위한 준비=2003년 1월 ‘종가집’은 식의약청에 HACCP 업소 지정을 신청했다. 심사 나온 전문가들은 공장에서 먼지·거미줄 등을 찾아낸 뒤 ‘너무합니다’란 노래를 부르면서 곧바로 철수했다. HACCP 지정을 너무 우습게 봤다는 것이다. 그 후 공장을 새로 세운다는 기분으로 시설 보완에 20억원을 투자하고 전문 컨설팅도 받았다. 마침내 2004년 1월 김치업계 처음으로 HACCP 지정을 받았다.

◇공장을 돌아보니=공장 내부에선 냉기가 느껴졌다. 실내 온도를 15도로 늘 일정하게 유지하기 때문이다. 여규영 QA팀장은 “이보다 온도를 높이면 작업자가 마스크나 작업복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직원 개인 라커의 상부가 비스듬히 경사져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먼지가 라커 위에 쌓이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최종 제품에서 이물을 걸러내기 위해 15명(40명이 교대 근무)을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 대 가격이 5000만원선인 X선 검출기 6대와 쇳조각을 찾아내는 금속검출기가 공장 곳곳에서 작동되고 있었다.

횡성=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HACCP(해썹)이란
식품 안전 위협요소 미리 걸러내
마크 붙은 제품은 안심 먹거리죠

HACCP는 우리말로는 ‘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이다. 줄여서 ‘해썹’이라고 한다. 식품 안전을 위협하는 것을 최종 제품이 아닌 제조 공정에서 미리 걸러 내자는 식품 안전관리 시스템이다. 제품 생산 과정에 세균·중금속·이물 등 위해요소를 예측하고(HA), 이를 제거·방지하기 위한 결정적인 것(CCP) 몇 가지(가열온도·유통기한 등)를 선정, 집중 관리한다.

과거의 식품 안전이 사후 검사에 치중했다면 HACCP는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기존의 식품 안전관리가 ‘귀납적’이었던데 반해 HACCP는 ‘연역적’ 관리법으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룬 것으로 평가한다.

HACCP는 용어 자체가 어려워서인지 일반인에겐 생소하다. 그러나 식품업계 종사자에겐 친숙한 용어다. 이물 사고·식중독 등 식품 안전 사고가 발생하면 대책으로 흔히 제시된다. 최근 ‘노래방 새우깡’ 사고 이후 이물 사고가 잇따르자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내놓은 예방책 중 하나도 ‘HACCP 확대 적용’이었다.

처음 HACCP를 도입한 것은 미국의 필스버리사. 1960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계획에 참여했던 필스버리사는 우주비행사에게 가장 안전한 식품을 납품하기 위해 공장에 이 시스템을 적용했다.

그 후 유엔 산하 기구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95년 모든 식품에 HACCP를 적용하도록 권장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국내엔 95년에 도입됐다. 지금까지 식품제조업소·외식업소 등 382곳이 HACCP 업소로 지정받았지만 올 연말까지는 1400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5년부터는 모든 식품 관련 업소에서 HACCP가 의무적으로 실시된다.

일반인이 가장 쉽게 HACCP를 접할 수 있는 것은 마트에서다. 마트에서 산 식품에 HACCP 마크가 붙어 있으면 ‘정부가 해당 제품의 위생·안전성을 나름대로 보장한 제품’이라고 여기면 된다. 요즘은 학교급식이나 집단급식소가 식재료 공급업소를 선정할 때도 HACCP 지정 업소에서 생산된 것인지를 중시한다.



“비싸도 사먹겠다” 37.1%
HACCP 인지도 낮지만 소비자 선호도 높은 편

식품제조업소·집단급식소 등이 농림수산식품부·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HACCP 업소 지정을 받으려면 위생시설·교육 등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시설 개선, 전문 인력 교육, 유지 관리 등 초기 투자비도 상당하다.

식품업체가 HACCP 업소로 지정받으면 혜택이 많다. 제품에 ‘HACCP 표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매력이다. 광고를 통해 자사 제품이 ‘HACCP’ 제품임을 대중에게 홍보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속 공무원의 출입·검사·수거도 완화된다. 세금 감면도 받는다.

그러나 ‘한번 HACCP 지정 회사가 영원한 HACCP 회사’는 아니다. 식품 안전을 소홀히 해 영업 정지 등 처분을 받으면 HACCP 지정이 취소된다.

HACCP 지정 업소에서 생산된 제품에 이물 등 소비자 불만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5년 식품제조회사 1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HACCP 업소로 지정된 이후 직원의 식품 안전의식 향상(17곳 모두), 소비자 만족도 증가(15곳), 소비자 클레임 감소(11곳) 효과를 얻었다.

하지만 HACCP의 소비자 인지도는 극히 낮은 상태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0월 전국의 성인 2022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한 결과 ‘HACCP 표시를 알고 있었다’는 사람은 14.3%에 불과했다. 그러나 HACCP 표시 제품에 소비자의 선호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HACCP 표시 제품을 살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가격이 비슷하다면 사겠다’(54.3%), ‘가격이 비싸도 사겠다’(37.1%) 등 긍정적인 답변이 91.4%에 달했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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