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 점 소장…박물관 짓는 게 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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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05면

지상에 ‘핑크 천국’이 있다면 이곳일 게다. ‘바비의 예쁜 눈썹 & 네일’이라는 핑크빛 간판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지하 매장으로 내려가는 양쪽 벽면이 온통 핑크 일색이다. 핑크 스티커·표지판·액자… 안에 들어서면 3면 벽면을 채운 장식장에 수백 개의 바비 인형이 전시돼 있다. 판매용이 아니다. 소문난 바비 매니어 정미란(44) 사장이 십수 년에 걸쳐 모은 애장품이다.

바비컬렉터 정미란씨

“어릴 때부터 예쁜 인형을 좋아해서 취미로 모았어요. 그러다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 몇 년 지내는 동안 친구로 사귄 일본인 부인이 바비 매니어라서 자극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진귀한 바비 인형을 수집하기 시작했죠.”

인터넷을 통해 같은 취미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바비 수집열은 불이 붙었다. 99년 이화여대 앞에 커피숍 ‘바비 오픈 카페’를 열어 매장 내 인형 전시를 시작했고, 2001년 인터넷 동호회 ‘바비클럽’을 만들어 오프라인 모임도 주도했다.

“한창 모일 땐 이대 소강당에서 바비 코스프레를 할 정도로 활발했지요.” 컬렉팅 붐에 힘입어, 빈티지 인형에 세 배 가까이 프리미엄이 붙는 등 소장 가치 면에서도 쏠쏠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전체적으로 열기가 주춤한 상태란다. “예전만큼 컬렉터 활동이 왕성하지 않아요. 오래된 매니어들끼리 정보 공유하며 꾸준히 만나는 정도죠.”

그간 모은 인형은 500여 점. 가장 오래된 것은 61년도에 발매된 워킹 바비다. 99년 일본에서 경매를 통해 구입했다. 이 밖에도 홀리데이(holiday) 시리즈, 할리우드 시리즈, 디자이너 시리즈, 패션 모델 시리즈 등 희귀한 ‘작품’을 종류별로 다 구비했다. 하나하나가 자식처럼 예쁘고 귀하지만 그중 하나만 꼽으라면 디자이너 놀란 밀러의 ‘Nolan Miller #2’를 가장 아낀단다.

바비를 위해 직접 옷을 만들기도 했다. 인조 속눈썹을 달고, 머리를 파마하는 등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바비’를 만들었다. “결혼 때 제가 입은 웨딩드레스를 축소판으로 주문해 입혀 놓은 바비도 있어요. 초등학생 딸도 제가 가진 바비를 탐내지만, 딸에게도 물려주기 아까울 만큼 소중한 수집품들이죠.”

아쉬운 것은 소장 인형을 넉넉히 전시할 공간이 없다는 것.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카페 문을 닫고 위층의 네일숍과 합치면서, 현재는 네일숍의 인테리어 소품 신세로 전락했다. 그나마도 설명 안내판도 없이 겹겹이 세워놓기만 한 상태라 ‘진가’를 알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 인형들에게 언젠가 폼 나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정 사장의 꿈이다.

“재원만 마련되면 10년 내에 바비 박물관을 여는 게 꿈이에요. 제주도의 테디 베어 박물관처럼 근사하게 차려 놓으면 로맨틱하고 환상적일 텐데… 인형도 더 많이, 한 1000개 정도는 돼야 할 텐데….”

정씨는 인형 컬렉팅에 냉담한 사회적 시선에 아쉬움을 토했다. “쓸데없는 데 돈 쓴다고 비난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남한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만족을 위한 취미인데, 그런 몰이해가 답답하죠. 특히 바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순수하고 섬세한 면이 많아요. 바비를 통해 꿈을 꾸고 아름다운 삶을 대리만족하기 때문일 거예요.”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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