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조류인플루엔자 대책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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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북 김제와 정읍의 가금류 농장에서 발생했다. 2003년 이후 세 번째다. 당장 AI 확산으로 가금류 사육 농가와 관련 식품업계의 피해가 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차제에 정부는 ‘대유행 인플루엔자(PI)’에 대비한 국가적인 대비책을 점검해야 한다. PI란 AI가 변이를 일으켜 인체에 감염되는 인플루엔자가 된 것을 말한다. AI가 PI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상존한다. 만약 PI가 발생한다면, 이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인류 전체의 재앙이 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1918년 스페인에서 인플루엔자 발병 시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당시 기록에 따르면 760만 명이 감염돼 14만 명이 죽었다. 이만큼 PI의 피해는 막대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고병원성(H5N1) AI의 인체감염 실태는 이미 불안한 전조를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AI는 67개국의 가금류와 조류에서 발생했으며, 인체감염만 따지면 14개국에서 379명의 감염자가 발생해 이 중 239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이 63%로 치명적인 AI는 아시아에서 유럽 및 아프리카로 확산 일로에 있다. 이미 AI는 동남아에 토착화되었으며, 최근 PI로 진화하는 전 단계로 여겨지는 가족 내 전염 사례도 인도네시아·파키스탄 등지에서 보고되고 있다.

PI가 시작되면 예상 피해는 심각하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 내지 2분의 1이 감염될 수 있으며,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초래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각국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PI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은 손 씻기, 마스크 착용, 환자 격리와 같은 고전적 공중보건 조치와, 치료와 예방에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 및 대유행 백신 마련 대책으로 대별할 수 있다.

공중보건 조치는 PI 유행의 전파속도를 둔화시킬 수는 있으나, 단독으로는 피해를 줄이는 데 제한이 있다.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와 백신을 병행했을 때에만 효과적인 피해예방 대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선진 각국은 타미플루와 백신 비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백신은 PI에 대한 가장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수단으로 선진 각국은 적시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접종하기 위한 대유행 백신 개발과 비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현재 5000만 명분의 타미플루와 1300만 명분의 대유행 백신을 비축하고 있으며, 2011년까지 전 국민을 접종할 수 있는 백신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위스는 이미 전 국민을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의 백신을 비축해 놓고 있다. 이웃 일본도 1000만 명분의 백신을 비축했고, 중국은 대유행 백신 개발을 마치고 대량생산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고작 124만 명분의 항바이러스제만을 비축하고 있을 뿐 대유행 백신은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대유행 백신의 개발, 생산 및 비축은 서둘러야 한다. 국내에서 대유행 백신의 개발은 아직 동물실험 단계에 머무르고 있어, 당장 PI가 닥칠 경우 맨주먹으로 나서야 할 상황이다. 혹자는 돈으로 백신을 사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막상 PI가 발생하면 아무리 돈을 많이 쌓아놓고 있어도 백신을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백신 생산능력은 수요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며,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PI 발생 시 자국민에게 백신을 우선 공급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돈을 아무리 주어도 구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면서 정보기술(IT)·생명공학(B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명성에 걸맞게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역량을 모아 백신 개발을 포함한 PI 대비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