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스템으로 위기 넘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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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불행하고 가슴 답답한 일이 또 터졌다. 100년 만의 폭설에 이어 이번에는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우리 사회는 지금 보수와 혁신, 신세대와 구세대, 내편과 네편, 친노(親盧)와 반노(反盧) 등으로 나뉘어 극한적 대결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 간의 집단갈등은 우려될 정도로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경제다. 경제라는 꽃은 안정이라는 환경 속에서만 자라는 특성이 있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제일 싫어한다. 지금 우리 경제의 모습을 보면 소비부진에 따른 내수경기의 침체, 고용증가 없는 경제성장, 계속되는 투자부진과 국내기업의 해외탈출, 4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 원자재 및 유가의 급등, 상장기업의 수익성 둔화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나마 세계경제의 회복에 힘입어 우리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차에 다시 불행한 정치적 위기가 겹친 것이다.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다. 우리는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다. 이 체제는 시스템에 의지해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는 체제와 달리, 위기에 제도적 대응을 함으로써 문제를 수습해 갈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문제도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대로만 한다면 국민생활에 직접적인 큰 영향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과연 盧대통령이 현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헌법재판소가 결정해 줄 것이다. 결과를 침착하게 기다리면 된다. 국민은 대통령의 탄핵문제를 둘러싸고 집단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만일 정당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4월 15일 투표로써 의사표시를 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혼란스럽기는 해도 우리는 그동안 쌓아온 위기극복의 노하우와 우수한 행정시스템, 그리고 경제저력으로 당분간은 어려움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탄핵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의 충격은 일시적이었으며 우려했던 큰 혼란은 생기지 않았다. 그런 대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장기화한다면 상황은 달라지고 엄청난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도 정치.사회적 불안정 때문에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 하여 국제 시장에서 실력 이하로 저평가받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고 불확실성이 커지면 한국의 대외 신인도는 더욱 떨어져 무역거래와 외국인의 대한(對韓)직접투자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 모두가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모든 자원과 시장을 해외에 의존하는 통상국가 한국의 생존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믿고 거래할 만한 국가, 문제는 있으나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달려 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우리 사회는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대내외에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민주국가란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다.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싸고 서로를 탓하기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상대를 존중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민이 동요하지 않고, 평상심으로 돌아가 자기가 맡은 바 생업에 최선을 다해주면 우리는 이번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정부와 기업, 근로자와 국민 각자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고, 외환위기를 넘겼던 것처럼 이번 고비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성숙한 위기관리 능력이 있는 국민으로 대내외에 인정받고,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줄면서 대외신인도와 경제는 오히려 개선될 수 있다. 그것만이 현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정재영 성균관대학교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