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20대 '백수'들에게 용기 주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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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청년 실업자의 고통을 모터사이클의 쾌속 질주로 모두 날려버리고 싶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주부 김정은(金廷恩.29)씨. 그는 지난 15일부터 닷새 일정으로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일주하고 있다. 서울을 출발해 전주를 거쳐 광주.부산.대전.인천을 돌아 다시 서울로 오는 총 2000㎞의 대장정이다.

이번 전국 일주 행사는 혼다 모터사이클 코리아가 신형 모터사이클 '샤도우750'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했다. 시승단 다섯명을 뽑는 데 1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金씨는 "우리 부부를 포함한 전국 '이태백(20대의 태반이 백수)'의 백수 탈출을 기원하며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는 내용의 지원서를 제출했고, 결국 홍일점으로 선발됐다.

이번 행사에는 취업 준비생들이 대거 지원했다고 혼다 측의 김선경 대리는 말했다. 우선 닷새라는 긴 시간을 낼 수 있는데다 취업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기 때문인 것 같다고 金대리는 설명했다.

올해 金씨의 소원은 '부부 백수 탈출'이다. 안동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교원 임용교시에 목을 매고 있다. 대학 동창인 남편 최현일(28)씨 역시 번듯한 직장을 잡는 게 목표다. 남편 崔씨는 계속되는 '백수 생활'로 생계가 어렵자 지난해 말 중소 경비업체에 임시직으로 취업한 뒤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면서 취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다섯살, 여섯살 두 딸의 엄마인 金씨의 고향은 '양반 고을' 경북 안동이다. 자신이 모터사이클을 탄다는 사실을 친정 부모가 알면 큰일난다는 金씨는 남편 때문에 모터사이클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연애 시절부터 남편이 모는 모터사이클의 뒷자리에서 짜릿한 속도감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결혼 후 부부는 모터사이클 동호회에 가입했고, 곁눈질로 배운 운전솜씨로 가끔씩 핸들을 잡던 金씨도 여덟번 낙방한 끝에 지난해 가을 '대망의' 2종 소형 운전면허를 따냈다.

"제가 끝내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했던 것처럼 제 남편도 비록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끝까지 도전해 꿈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이번 저의 전국 일주가 우리 부부뿐 아니라 모든 실업자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金씨는 '부르릉' 시동키를 힘차게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글.사진=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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