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며 친구 만드는 '특별한' 공부방

중앙일보

입력

"배우는 학생, 가르치는 사람
열의만큼은 전국 최고지요"


  창조지역아동센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여기 있는 29명 아이들의 왕엄마에요. 2005년부터 모여든 아이들이 전부 제 자식과도 같습니다.
  사실 엄마 경력은 꽤 됩니다. 대학 졸업 후 유치원 교사를 했고, 결혼 후 8년간 주부로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다 공부방 왕엄마가 되었냐고요? 저도 처음엔 생각지 못한 일이었죠.
  어느 날 평소 다니던 교회의 어린이예배에서 봉사하게 되었는데, 가만히 보니 아이들이 밥을 안 먹고 오는 것이었어요.
  이유를 물으니 집에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나눠주는 간식을 동생에게도 주겠다며 2개씩 챙겨가는 아이도 보였습니다.
  ‘중산층 가정만 있는 줄 알았던 동네에 이런 아이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유럽식 전원주택 단지 같은 이 곳에도 월세 단칸방, 지하방이 구석구석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돈 버느라 바쁜 어른들이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 방치돼 있었어요. 밖으로만 겉돌고, 집에 혼자 있다 사고치고….
  학교에서도 이 아이들을 ‘별도 관리’하고 친구들도 같이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공부는 물론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양육자가 함께 상담 받는 것이 중요했죠.
  각 분야의 전문가와 후원자의 도움으로 독서치료·미술치료·음악치료 등을 받도록 했습니다. 치료 후 한결 밝아진 아이들은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교내 대회에서 상도 타오고 공부 실력이 부쩍 느는 걸 볼 때마다 참 흐뭇합니다. 중학교 1학년인 영아(가명)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합니다. “고모가 착해져서 너무 좋아요”라고 하더군요.
  부모님이 안 계셔 고모와 살고 있는 영아는 최근 고모와 함께 미술치료를 받았답니다. 저는 “고모가 착해진 게 아니라 영아 마음이 예뻐진 거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또 하루는 공부 도우미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시험을 치렀는데 아무래도 형준(가명)이가 답을 외워서 푼 것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기초적인 문제도 풀지 못하던 아이가 백점을 맞았으니 그런 의심이 들만도 했죠.
  조심스럽게 아이를 불러와 다시 문제를 풀게 했더니 놀랍게도 척척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물어보니 아이는 웃으며 “모르겠어요. 언젠가부터 그냥 공부가 쉬워졌어요”라고 하네요. 중간고사 목표는 평균 90점이라고 야무지게 말합니다. 기특하죠? 아이들은 이렇게 조금만 사랑을 주어도 쑥쑥 크나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 뒤에는 도움의 손길이 많습니다. 고급 아파트에서 아쉬울 것 없이 살면서도 잊지 않고 우리 아이들을 챙기는 주부님, 부동산업을 하며 한 아이와 결연을 맺어 장학활동을 하는 어머님도 있습니다.
  현직 교사로서 아이들 수학 수업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배은주 어머님도 “애들 다 커서 시간이 여유 있다”며 “어떤 문화생활을 하는 것보다도 삶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다”고 말합니다.
  대형 학원을 다니거나 고액 과외를 받는 건 아니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학생이나 열의만큼은 남부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겐 고민이 생겼습니다. 30인 미만 시설로 등록돼 있어 아이들을 더 받고 싶어도 못 받기 때문입니다. 대기자는 점점 느는데….
  하지만 저도 우리 아이들처럼 희망을 갖고 꿈을 키워나가려 합니다. 지금 제 목표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게 말이죠. 언젠간 그 날이 오겠죠?

프리미엄 최은혜 기자
후원문의= 031-714-9101, 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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