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대던 부시- 푸틴 ‘고별회담’서 춤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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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흑해 연안 휴양 도시 소치에 있는 푸틴의 별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두 정상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 방어(MD) 기지 구축 계획 등에 대해 논의했다. [소치 AP=연합뉴스]

5일 저녁 흑해 연안의 최대 휴양도시 소치에 있는 러시아 대통령 별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소치를 찾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위해 연 환영 만찬이 한창이었다. 러시아 무용수들이 전통 음악에 맞춰 활기찬 춤을 추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무대 앞으로 뛰어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뒤이어 푸틴도 무대로 나가 함께 춤을 췄다. 만찬장은 음악 소리와 박수 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제2의 냉전’을 방불케 한 갈등을 빚어 오던 부시와 푸틴 대통령이 오랜만에 화합 분위기를 연출한 순간이었다. 2~4일 루마니아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한 부시는 5월 퇴임을 앞둔 푸틴과 이틀 동안 별도의 정상회담을 위해 소치를 찾았다. 부시도 내년 1월에 물러나기 때문에 이번 회담은 사실상 두 정상의 ‘고별회담’이나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드러난 회담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했다.

푸틴은 부시와 석양이 지는 소치 해안을 산책하며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곤 저녁 만찬장에서 함께 춤까지 췄다. 이튿날 아침부터 시작된 회담에서도 두 정상은 오랜 친구처럼 농담을 주고받으며 허물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양국 간 갈등의 불씨가 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푸틴은 “러시아가 여전히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옛 소련권 국가인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표시했다. 부시도 “동유럽 MD 기지가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두 정상은 취임 후 지금까지 23차례나 만났다. 2001년 1월 취임한 부시는 같은 해 6월 슬로베니아에서 푸틴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이 회담 뒤 부시는 “푸틴의 눈에서 솔직함과 신뢰를 읽었다. 그의 영혼을 이해하게 됐다”고 만족해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을 러시아가 적극 지지하고 나서면서 두 정상의 관계는 밀월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오일달러로 자신감을 회복한 푸틴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 등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양국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이 폴란드와 체코에 MD 기지를 구축하는 계획을 밀어붙이면서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푸틴은 지난해 2월 독일 뮌헨 국제안보회의에서 미국의 일방주의를 강력히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5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식에선 미국을 나치 독일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이런 푸틴을 부시는 “교활하다(wily)”고 비난했다. 막말로까지 치닫던 두 정상의 7년 애증 관계는 소치 회담의 어색한 화해 제스처로 마침표를 찍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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