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한 북한에 맞불 자제 차분한 대응으로 ‘김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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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남한 당국자들을 개성공단에서 퇴거시킨 것을 시작으로 남측에 대해 연일 극언과 압박을 가해 오고 있다. ‘김태영 합참의장 발언에 대한 사과 요구’→‘잿더미’→‘군사적 대응’→‘서해에서 예상 외 대응조치’ 등의 순이다. 북한 군당국은 지난 3일 남북 대화의 전면 중단을 시사한 뒤 곧바로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로 치달을 듯한 폭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의외로 차분하다. 북한의 도발적인 발언에 즉각 대응하지도 않고 북한을 회유하기 위한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흥분한 북한의 김을 빼는 분위기다.

이 같은 정부의 태도는 남북관계에 ‘원칙’을 지킨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관계의 일시적 개선에 매달리기보다는 남북 간 긴장을 근원적으로 해소시켜 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데 무게를 더 두기 때문이다. 최근 잇따라 나온 북한의 도발성 조치에 대해 맞불 작전은 삼가면서 장기적으로 접근하겠다는 태도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4일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을 만나 “우리는 참고 기다릴 것”이라고 한 언급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 장관은 “남북이 상생하고 공동번영해 나가자는 우리의 뜻은 확실하다”면서 “(북한도) 우리가 진심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듣고 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북한의 사과 요구에 대한 답신에서 “사과할 뜻도 이유도 없다”(2일)에 이어 “이미 보낸 답신 전통문에서 우리 입장을 충분히 밝혔다”(3일)고 한 내용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정부가 북한에 대해 성급한 대처보다 차분한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타결의 고비를 맞고 있는 6자회담의 진전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맞불 대응으로 북한을 자극하고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에는 현재 북·미 간 협의에서 견해가 좁혀지고 있는 북핵 신고 문제의 타결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북한이 대북 강경기조의 남한을 멀리하고 미국 및 중국과만 대화와 거래를 하는 이른바 ‘신 통미봉남(通美封南)’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물론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군 당국의 기조는 다르다. 군은 북한이 군사적으로 도발하면 현장에서 즉각 강력 대응해야 확전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에 따라 한·미는 최근 잇따라 북한의 군사적인 도발에 대한 한반도 방위 공조의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김태영 합참의장은 4일 한미연합사 연병장에서 열린 취임 환영 행사에서 버웰 벨 연합사령관에게 “한국군과 미군은 혈맹의 전우”라고 강조했다. 전날 벨 사령관이 극동포럼 세미나에서 “북한이 공격할 경우 (한·미)동맹군이 신속하고 결정적으로 이를 격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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