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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가상 지구'의 실패…누가 산소를 먹어치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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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사막의 생태실험장 ‘바이오스피어(Biosphere) 2’ 전경. 8명의 인간이 넓이 1만2750㎡의 유리온실에서 4000여 종의 생물군과 함께 자급자족 시스템으로 2년간 거주했다.

인간실험 바이오스피어2, 2년 20분
제인 포인터 지금,
알마,
612쪽, 2만2000원

인간이 화성에 기지를 만들어 거주하려면 어떤 시설이 필요할까? 미래에 태양계 외부로 이민을 가려는 지구인들이 있다면 거대한 우주선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해야 할까?

가장 유력한 답은 자급자족하는 생태계, 즉 지구의 축소판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같은 아이디어를 직접 실험해 본 프로젝트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바이오스피어(Biosphere) 2’다. 바이오는 생물을, 스피어는 활동 범위 또는 영역을 뜻하니까 바이오스피어란 생물이 살아가는 장소, 즉 생물권이라는 뜻이다. 에드 배스라는 미국의 거부가 SBV라는 벤처기업을 통해 2억5000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한 결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1987년 400명이 넘는 생태학자, 지질학자, 건축가, 의사, 전기기술자, 식물학자, 농학자, 회계사, 사진촬영기사들이 달려들어 설계에 착수했다.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사막 한가운데에 넓이 1만2750㎡ 의 거대한 유리 온실을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벼·밀·상추·토마토·오이·당근·고구마 등 150여 종의 농작물, 돼지·닭·염소 등의 가축에서 뱀과 개미, 바닷말에 이르는 4,000여 종의 생물이 생태계를 이루어 자체순환을 하는 시스템을 건설하는 것이다. 내부는 거주구역·농업구역·자연구역으로 구분했고 자연구역은 열대우림·사바나·습지대·바다·사막의 다섯가지 생물권으로 구성했다.

공기조차 차단된 온실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오직 전기와 햇빛 뿐이었다.

1991년 9월 26일, 남녀 4명씩의 실험대원이 이곳에 스스로를 가두고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채 2년을 살았다. 과학자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고 언론에선 사기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들의 실험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일본에서는 바이오스피어 J를, 러시아에서는 바이오스-3을 건설해 유사한 후속실험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참가자 중 한명인 여성대원이 10여년 만에 최초로 밝히는 후일담이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스피어 실험에 따르는 다양한 인간적, 생태적 변수들을 적나라한 체험담으로 보여주는게 이 책의 미덕이다. 예컨대 산소 문제가 그렇다. 공기의 21%를 차지해야하는 산소 함량이 실험 초기부터 서서히 줄어들어 14 %까지 떨어진 것이다. 결국 액화산소 1. 4톤을 외부에서 공급받음으로써 프로젝트 자체가 실패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산소 부족의 원인은 과도한 토양미생물에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토양학자, 대기화학자, 생태학자들이 훨씬 더 나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더라면 우리는 토양 속에 그토록 많은 퇴비를 넣지 않았을 것이고 산소가 도대체 어디로 다 사라져버린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자급자족을 하다보니 수확량이 예상보다 적어 식량부족으로 전 대원이 허기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다. 원숭이 사료를 훔쳐먹기도 했다. 대원들 사이의 인간적인 갈등도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결국 도중에 정신과 의사가 들어와 전원을 심층 상담해야 했다. 섹스 문제는 ? 남녀 두 쌍이 원래 커플로 들어왔지만 나머지 4명은 2년간 금욕상태로 살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를 실패라고 하는데 대해서 저자는 말한다. “첫 시도에서 우리가 얼마나 목표에 가까이 접근했는지 보라!”

조현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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