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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집기 버린 기관 복지부 말고도 더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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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신림동 정부용품재활용센터 전시장에 진열돼 있는 의자들. 정부 과천청사에서 3월 28일 들여온 것으로 모두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는 멀쩡한 것들이다. [사진=박종근 기자]

서울 여의도에서 새로 사업을 시작한 박진균(42)씨는 지난달 27일 영등포재활용센터를 찾았다. 사무실에 놓을 중고 사무집기를 살 목적이었다. 박씨는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책상과 목재 서랍장을 발견하고 가격을 물었다. 그러나 센터 직원은 “그 물건들은 팔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해양수산부 건물로 입주하면서 내다버려 문제가 된 물건들인데, 청와대에서 조사해야 한다며 팔지 말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뉴스에서 보긴 했지만 이렇게 깨끗한 제품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처럼 사업하는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재활용 매장을 찾는데 공공기관은 이런 멀쩡한 물건을 내놓고 다시 새것으로 살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경제가 어려운데 공직사회가 알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공무원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하지만 멀쩡한 집기를 쓰지 않고 재활용센터에 내놓은 정부 기관은 복지부뿐이 아니었다.

3일 영등포재활용센터엔 복지부 집기 외에도 ‘이 물품은 국가자산입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은 다른 공공기관의 집기가 상당수 전시돼 있었다.

이 센터에서 6만원에 판매되는 의자에는 노동부 산하 서울 남부지방 노동사무소가 2005년 7월 16만6770원에 구입했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부처를 알 수 없지만 총무과(장관실) 스티커가 붙어 있는 유리 장식장은 2007년 7월 10일 33만원에 산 것이었다. 구입한 지 불과 9개월밖에 안 된 새 물건이었다. 옆에는 기획예산처 공공혁신본부가 2004년 5월 구입한 서랍장이 놓여 있었다.

정부 물품을 관리하는 조달청의 ‘내용연수(정부 물품의 사용연한)’ 고시에 따르면 책상이나 의자·서랍장 등은 보통 6~8년으로 정해져 있다. 이 기간이 지나더라도 사용에 지장이 없는 물품은 계속 사용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일부 공공기관은 사용연한이 지나지도 않은 물건을 내놓고 있었다.

다른 재활용센터에서도 멀쩡한 정부 물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날 신림동 정부물품재활용센터 전시장엔 정부 물품이었던 의자 20개와 책꽂이·서류 캐비닛 등이 진열돼 있었다. 옛 과학기술부 소속인 ‘생명해양에너지환경심의관’(취득일 2004년 12월), ‘원자력통제팀’(취득일 2004년 8월 20일) 등의 스티커가 붙어 있는 의자들은 당장 쓸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았다. 센터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실어왔다”고 말했다.

성동구 재활용센터에서 판매되는 가구의 10%가량도 정부 물품이었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2005년 2월 47만1710원에 구입한 회의용 탁자는 새 제품으로 팔아도 믿을 정도로 깨끗했다. 한 재활용센터 직원은 “정부 물품은 민간 물품에 비해 새것이라 없어서 못 파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 등의 물품을 수거하는 서울 서부지역 정부물품재활용센터 관계자는 “공공기관에서 나오는 집기·물품이 한 달에 5000점이 넘는다”고 전했다. 다른 재활용센터 관계자는 “부처 내부에서 돌려쓰면 좋을 텐데 남이 쓰던 물건은 싫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달청 관계자는 “구입가가 500만원 미만인 물품은 각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폐기를 결정한다”며 “재활용센터에 간 정부 물품은 판매가의 50%를 회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강기헌·장주영·임주리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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