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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열전24시] 박빙지역 후보들의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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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 도봉을에 출마한 통합민주당유인태 후보는 잠이 많기로 유명하다. 청와대 정무수석일 때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 석상에서도 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솔직한 화법과 더불어 잠은 그에게 ‘엽기 수석’이란 별명을 안겼다. 그런 유 후보가 근래 수면 시간을 네 시간으로 줄였다. 오전 5시30분 출근 인사를 시작, 한밤중인 12시30분 귀가할 때까지 내내 걸어다니며 유권자와 만난다.

서울 성동갑에서 민주당 최재천 후보와 싸우는 한나라당진수희 후보는 ‘100시간 행군’을 준비 중이다. 4일 오후 8시부터 선거운동이 끝나는 8일 자정까지 사실상 자지 않고 선거운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를 포함해 100여 명이 찜질방 등 한 표라도 있는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들 지역은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 중이다. 누구도 쉽게 승부를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국 245곳 가운데 70곳 가까이가 그렇다. 그중 40여 곳은 초박빙 지역이다. 여론조사마다 엎치락뒤치락한다. 한 표가 아쉬운 지역으로 후보들은 “힘들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을 정도로 돈다”고 말한다.

이들 지역 후보는 걷고 또 걷는다. 천안을의 한나라당 김호연 후보는 하루 꼬박 네 시간씩 걷는다. 선거운동 기간에 신발만 세 켤레를 버렸다. 김 후보 측은 “첫 출전이다 보니 최대한 유권자와 접촉을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맞수인 자유선진당박상돈 후보 측도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서울 노원병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와 맞서는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는 아예 신발을 한 치수(275㎜) 늘렸다. 발이 부르텄기 때문이다. 매일 3000여 명과 악수하느라 손바닥도 부었다.

이천-여주의 한나라당 이범관 후보는 하루 세 끼 모두 설렁탕일 때가 많다. 이 후보의 측근은 “지역 내 전 경로당을 두세 번 방문할 정도로 돌고 있다”며 “밥 먹을 시간도 모자라 가장 빠른 식사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4선을 한 친박연대의 이규택 후보에게 맞서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홍천-횡성에서 세 번째 대결을 벌이는 민주당 조일현, 한나라당 황영철 후보는 거리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역구가 넓어 근래엔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지 않는데도 차량으로 이동하는 거리가 매일 평균 400㎞”(홍 후보측)라고 토로했다.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후보들끼리 동선이 겹치기도 한다. 서울 노원을의 통합민주당 우원식 후보와 한나라당 권영진 후보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인 권 후보가 “(지역구 내) 경전철 사업에서 무슨 역할을 했다고 하느냐”고 하자 현역 의원인 우 후보가 “내 역할도 있다”고 응수하는 등 신경전이 벌어졌다.

박빙지 후보 대부분은 “잠 좀 자 봤으면…”이라고 토로한다. 자는 시간까지 쪼개 뛰기 때문이다. 서울 면적의 2.5배인 포천-연천의 한나라당 김영우 후보는 “하루 네 시간 자는 건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반면 안산 단원을의 한나라당 박순자 후보는 속이 타는 케이스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27일 급성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고 1일 선거운동에 나섰다가 수술 부위가 터졌기 때문이다. 3일에도 30여 분간 유권자와 만난 뒤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박 후보 측은 “선거운동을 한 게 채 네 시간이 못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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