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매니어 김문진씨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고르라고 했다. 그녀는 선뜻 앞에서 다섯 번째, 통로에서 네 번째 자리를 택했다. [촬영 협조=금호아트홀]
대학생 B씨, 주말에 모처럼 친구와 소극장 뮤지컬을 보러 갔습니다. 부지런을 떨어 1층 맨 앞줄을 차지했는데 공연 도중 객석으로 내려온 배우가 바로 옆자리에 앉은 여성 관객에게 불쑥 선물을 건네지 뭐예요. “아, 아까워. 한 칸만 옆자리로 고를걸….”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속상해했다지요.
아직도 ‘비싼 자리=좋은 자리’로 알고 계시나요? 공연 내용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앞자리, 아니면 가운데만 고집하시나요? 함께 공부해 보실까요. 공연의 장르와 내용을 잘 연구하면 ‘좋은 자리’ 안에 있는 ‘더 좋은 자리’가 보입니다. 때론 가격이 싼 좌석 중에도 ‘보석 같은 명당’이 숨어 있습니다. 남들과 같은 돈을 내고 간 공연에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비밀, week&이 공개합니다.
글=이영희 기자
뮤지컬 스타와 놀려면 통로 좌석
용산국립중앙박물관 공연장 [중앙포토]
★ 이런 공연, 이런 자리
오케스트라
독주 · 실내악
상대적으로 연주 소리가 크지 않은 독주나 실내악의 경우 1층 자리가 잘 들린다.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피아노 독주회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보이느냐’에 따라 좋은 자리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갈린다.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을 볼 수 있는 1층 왼쪽 앞 좌석이나 무대 뒤쪽 합창석 왼쪽 좌석의 표가 1층 중앙의 VIP석보다 먼저 팔려나간다. 이 경우 원래 C석 수준으로 책정돼 있는 합창석의 가격이 A석, S석 수준까지 치솟기도 한다. 인터넷 클래식음악 사이트 ‘슈만과 클라라’의 전상헌씨는 “피아노 공연은 손가락만 포기하면 좋은 자리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맘껏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피아노 줄을 통해 소리가 뻗어나가는 방향이 오른쪽이라 오른쪽 좌석의 음향이 더 섬세하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 매니어의 경우에는 손보다 화려한 페달링을 보기 위해 왼쪽 맨 앞쪽 좌석을 선호하기도 한다.
오페라
그동안 오페라 공연에서는 앞쪽 자리가 ‘비(非)인기석’이었다. 뮤지컬과는 달리 가까이서 얼굴을 확인하고픈 인기 배우가 별로 없었던 데다 앞자리에 앉으면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에 성악가의 목소리가 묻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오페라 공연에서는 무대가 한눈에 보이면서도 악단의 연주와 성악가의 노래가 조화를 이루는 2층 앞쪽 좌석이 가장 좋은 자리로 꼽힌다. 외국 영화에서 귀족들이 밀담을 나누거나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소로 애용되는 ‘박스석’도 오페라 공연의 우아한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좋은 자리다. 그러나 최근 오페라에도 인기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성악가의 표정과 연기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앞쪽 자리를 고집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1층 맨 앞자리는 가격도 싸기 때문에 일석이조다. 오페라 애호가인 회사원 신지애씨는 “앞자리에 앉으면 자막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오페라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 화려한 무대장치를 자랑하는 대형 뮤지컬 무대를 전체적으로 즐기기 위해선 1층 5열 뒤쪽이나 2층 앞쪽 자리가 좋다. 하지만 아무래도 뮤지컬 매니어들은 맨 앞자리를 선호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스타’를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극장 뮤지컬의 경우 맨 앞자리가 인기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앞자리에 앉으면 객석으로 내려온 배우들과 스킨십을 하거나, 무대로 불려 올라가 공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요즘 공연 중인 뮤지컬 ‘빨래’에서는 2부 시작 때 배우들이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 함께 사진을 찍는다. 이때 선택받는 관객들의 좌석번호는 대략 1열 16번에서 20번 사이로 정해져 있다. 장기 공연 중인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사비타)’에도 배우가 공연 중에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의 머리를 흐트러뜨리는 장면이 있다. ‘사비타’를 제작한 엠뮤지컬컴퍼니 서지용 차장은 “배우가 즉흥적으로 결정하지만 대체로 2, 3, 4열의 통로 쪽 좌석이 선택된다”고 말했다. 뮤지컬 ‘캐츠’에서는 고양이들이 아예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 몸을 비비며 논다. 이 자리는 아예 ‘젤리클석’으로 지정해 따로 판매한다. 인터넷 동호회 ‘뮤지컬매니아’ 운영진 김문진씨는 “공연이 시작되면 이 같은 ‘이벤트석’ 정보가 팬들 사이에 금세 알려지고, 그 자리부터 매진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무용
8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돈키호테’를 보고 싶다면 어느 자리를 예매하는 게 좋을까. ABT의 스타 무용수 팔로마 헤레라와 앙헬 코레야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느껴야 한다면 물론 앞자리다. 유형종 ‘뮤지크바움’ 대표는 “맨 앞자리에 앉으면 배우와 무용수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그대로 들려 함께 춤추고 있는 듯한 흥분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발레 공연은 위층보다는 1층에서 봐야 무용수들의 다리가 길어 보여 더 아름답다는 의견도 있다. 단 공연장에 따라 너무 앞쪽 자리는 무용수들의 발끝이 잘 안 보이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남성 무용수들의 힘있는 군무를 감상하려면 2층 맨 앞자리가 제격이다. 전문가들은 티켓가격이 비싼 발레공연에서 어쩔 수 없이 뒤쪽이나 위쪽 자리를 선택했을 경우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갖고 가 무용수들의 독무를 가까이서 보듯 감상하는 것이 발레를 100% 즐기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영화
최근 생긴 극장들은 대부분 관객들의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특별히 ‘나쁜 자리’라고 할 만한 좌석이 없다. 하지만 상영관마다 최적의 화면과 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은 존재한다. 바로 스크린 가운데서 상영관 뒤 벽까지의 직선거리를 측정했을 때 3분의 2지점에 위치하는 좌석이다. 총 10열의 좌석이 있다면 보통 6, 7열의 중앙쯤이다. 멀티플렉스 CGV 홍보팀의 윤여진씨는 “상영관의 영상이나 사운드를 테스트할 때 시각적 · 청각적으로 가장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이 부근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CGV 용산·일산·서면·인천에 설치된 아이맥스 상영관의 경우는 앞에서 3분의 1지점이 명당이다. 화면이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오는 것이 아이맥스 영화의 묘미이기 때문.
좋은 좌석을 먼저 선택하려면 각 극장의 인터넷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현재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들은 자체 사이트 내에서 손님들이 직접 좌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예매 사이트를 이용하면 좌석 선택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메가박스 홍보팀의 최정희씨는 “보통 예매 상황을 보면 중간에서 약간 뒤쪽부터 팔리기 시작해 뒤쪽 좌석이 먼저 팔려나간다”며 “앞자리의 불편을 덜기 위해 최근에는 극장들이 스크린과 좌석 사이 폭을 넓히고 발걸이를 설치하는 등 특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이런 자리, 저런 장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