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앤드차일드>이사한 뒤로 기죽은 창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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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3월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나는 좀 들떠있었다.
요즘같이 아이들의 친구가 귀할때 마침 우리 집 아래층에 큰 아이인 창수(5) 또래 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내심 행운이다 싶은 생각까지 들면서 애 친구사귀기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 안심했다.그러나 이런 희망사항은 곧 깨져버렸다.
그 아이는 창수보다 훨씬 똑똑하고 사회성이 좋았으며 생일도 11개월이나 빨라 친구라기보다 형 같았다.그러나 창수는 형(?)이 시키는 대로 말을 듣기보다 자신이 대장하던 때와 똑같이 행동하다보니 결과는 함께 놀지도 못하고 맞기만 하 는 것이었다.어떤 때는 장난감을 뒤집어 엎고 안전하게 숨을 곳을 찾아 엄마에게 달려오기도 했다.
참 난감했다.나는 생각끝에 안전한 보호처가 되기로 했다.툭탁거리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얘들아,창수랑 사이좋게 놀아라』하며 온갖 간섭을 다했다.다른 동에 사는 얘들까지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것도 해주면서 창수가 대장노릇을 하고 기가 살도록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형에겐 창수가 여전히 질서를 모르는 천방지축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의 아들 기살리기 노력은 4~5개월 계속됐다.
『평생 애들 따라 다닐거야』라며 이웃집 애엄마가 한마디 할때까지. 그 말한마디는 순간 나의 뒷머리를 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창수의 기살리기를 포기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기로 했다.구원을 바라는 눈길을 보내며 서운해 하던 창수는 한달여가지난 어느날부터 내게 달려오지 않았다.자기 나름대로 눈치를 보며 굽힐줄도 알게되고 요령도 생기더니 내가 염려 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적응해갔다.
오늘도 창수는 친구들과 몇번 티격태격하면서도 신나게 잘 노는것같다.애들속에 끼어 있는 창수의 얼굴이 한결 의젓해 보인다.
박영희〈서울서초구반포2동 신반포한신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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