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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20.金斗樑의 삽살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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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조선시대부터 전해진 개그림 가운데 여기 이 삽살개만큼 으르렁거리는 표정을 실감나게 그린 그림이 있을까.
눈을 딱 부릅뜨고 발은 땅을 긁듯이 버티고 서서 공중을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듯이 험상궂다.
또 턱밑의 부숭부숭한 터럭은 옆으로 삐죽이 일어나 있고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조금 밀려 올라간 붉은 혀가 도전적으로 보여 이 삽살개의 용맹스러움을 한층 더해준다.검은 코에서부터 둥그렇게 말린 꼬리까지 화면에 꽉 차게 그려놓은 개 의 모습은 각 부분을 작은 세필로 꼼꼼하게 그렸지만 이상하게 당당한 위풍을 절로 풍기고 있다.
용맹무쌍하고 당당한 모습에 덧붙여 화제(畵題)도 이 그림이 그저 보통으로 그려진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한다. 『사립문에서 밤을 지킴이 너의 임무이거늘 어찌하여 노상에서 대낮에도 이같이 짖어대느냐.계해유월 초하루 다음날 김두량그림(柴門夜直 是爾之任 如何途上 晝亦若此 癸亥 六月初吉 翌日 金斗樑圖)』.
김두량(1696~1763)은 조선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화원중한사람이다.그의 그림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고양이와 나비를 잘 그린 변상벽(卞尙壁)이나 남계우(南啓宇)를 「卞고양이 南나비」라 불렀던 것처럼 「개」하면 김두량으로 통할 만큼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던 화원이었다.
이 그림의 화제 말미에 「金斗樑畵」라고 쓴 사람은 김두량 자신이 아니라 그를 총애했던 영조대왕이다.왕의 화제는 운을 맞춘시구가 아니고 편하게 기교없이 지은 짧은 줄글이지만 거기에는 그림속 개의 처지를 날카롭게 빗댄 풍자가 있다.
왕이 화원의 그림에 글귀를 남기는 것은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더욱이 왕이 쓴 글귀는 『사나운 개야 네가 나설 때가 아닌데왜 이러느냐』라는 뉘앙스로도 읽혀져 무엇인가 궁정안에서 일어난일을 암시한 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이채롭다. 사실 영조와 김두량의 관계는 역대 어느 군왕과 화원보다도가까운 사이였다.남리(南里)라는 김두량의 호는 영조가 직접 하사해준 것이었으며 영조가 김두량에게 『종신토록 급록(給祿)을 주게 명했다』는 기록(『東稗洛誦續』)마저 보인다.
영조가 일개 화원에게 보인 이같은 총애와 신임은 어떤 연유에서인가.영조는 즉위 직후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겪으며 자신의권력안정을 도왔던 신하들을 나중까지 우대했는데 그중에 김두량도포함돼 있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日本人이 벨기에서 구입 젊은 미술사 연구가로서 김두량에관한 석사논문을 썼던 김상엽(金相燁)씨는 이외에도 『김두량의 외조부.부친.사촌형제.아들등이 모두 화원이었을 만큼 유서깊은 화원가문이라는 집안의 후광과 다양한 그림에 두루 능통한 그 자신의 뛰어난 그 림솜씨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그림이 그려진 계해년은 1743년이다.영조대왕의 나이 50세며 김두량은 그보다 두살 아래인 48세인 해였다.즉위한지 19년째로서 탕평책에 의해 당쟁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노.소론의 갈등이 잠재해있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영조대왕이 어느 한가로운 날 틈을 내 자신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여긴 화원 김두량에게 그림 한폭을 그리게 하고서는그 그림에 붙여 슬쩍 자신의 심회를 털어놓고 속내가 통하는 왕과 신하간에 뜻모를 미소를 지었을 것 같은 재미 있는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이 국내에 최초로 알려진 것은 이동주(李東洲)선생이 그의 『한국회화소사』(1972년刊)에 흑백사진을 소개하면서 부터다.이동주선생은 그림과 함께 「김남리는 몇폭의 개그림 소품을남기고 있는데 그중에는 영조대왕의 친필화제(親筆 畵題)가 적힌가작도 있어 주의를 끈다(英國소재)」라고 기술해 이 작품이 김두량 그림으로서 중요한 작품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소재는 최근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동주선생은 최근 어느 자리에서 『런던에 갔을때 어느 고미술잡지에서 이 그림을 보고 오려두었던 것인데 책을 만들때 썼다』고 이 그림의 수록에 관해 회고했다.영국에 있다고 알려진 이 그림은 지난해 벨기에에서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 와 한 개인소장가의 손에 들어갔다.
이 작품을 소장하게 된 일본의 소장가는 『한국미술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 작품은 일본의 고미술상인을 통해 벨기에 소장가로부터 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털무늬 서양 陰影法 처리 또 그는 『벨기에인이 50년도넘게 소장했던 작품이었다고 들었다』며 영국소재설은 아마도 『영국잡지에 수록된 것이 잘못 전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당초 이작품은 여러 그림이 함께 표장된 화첩속에 들어있었다.『기상(奇賞)』이라고 이 름붙여진 화첩에는 개그림 외에도 소.말.새.다람쥐.토끼등 다양한 깃털짐승그림(翎毛畵)20여점이 함께 있었다. 화첩 머리에는 이 개그림에 보인 글귀가 영조대왕의 어필(御筆)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글씨의 주인에 대해서는 원로서예가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선생 역시 『특징있는 파임등 영조대왕의 글씨가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김두량의 개그림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너부죽이 엎드려 옆구리를 발로 긁는 능청스런 모습의 『긁는 개』(국립중앙박물관소장)다.
이번에 발견된 『삽살개』그림은 『긁는개』와 같은 익살은 없지만 역시 세필로 정교하고 꼼꼼하게 그리면서도 힘차고 용맹한 개의 자태를 묘사하고 있어 긁는 개에 버금가는 작품임을 말해주고있다. 안휘준(安輝濬.서울대 박물관장)교수는 『김두량의 그림실력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것을 입증해 줄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모처럼 귀중한 작품이 발견돼 반갑고 기쁘다』며 『역시뛰어난 솜씨』라고 말했다.
安교수는 또 『그림 위에 적힌 어필의 가치는 물론이고 검고 누른 터럭의 무늬처리에서 옅게나마 음영법(陰影法)이 보이고 있어 17세기후반부터 시작된 서양화법의 수용을 김두량그림에서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 다음은 靑瓷辰砂唐草文대접입니다.
글:尹哲圭기자 사진:崔正東기자 자문위원: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관장 安輝濬 서울대박물관관장 洪潤植 동국대박물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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