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직무정지 4일째] 盧대통령 행보와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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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된 지 사흘째인 14일 청와대에 황사가 드리워져 있다. 盧대통령은 이날 부인 권양숙 여사, 아들.딸 등과 등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연 기자]

14일 직무정지 사흘째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은 등산과 독서로 재충전했다. 평온한 분위기다. 지난 12일 국무위원과의 마지막 간담회에서 "국정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학습의 시간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던 연장선상이다.

盧대통령은 13일 참모들에게 비서실의 분위기를 물어본 뒤 "우리 국민은 정말로 현명하고 역사는 그래도 앞으로 가는 만큼 국민과 역사를 믿고 가자"며 "힘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폭설피해 복구 지원, 속초 산불 상황과 북한의 동향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盧대통령의 이 같은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특히 "헌재심판 전 盧대통령이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발언을 가능한 한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핵심 참모들의 건의도 盧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이런 盧대통령의 일상 행보를 떠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총선 전 열린우리당의 입당 여부다. 탄핵안 가결 직전인 지난 11일 회견에서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하겠다"며 "입당 결정을 전후해 자세한 (재신임)방식을 밝히겠다"고 했던 때문이다. 윤태영 대변인은 이와 관련, "회견에서의 얘기와 달라진 것이나 그 이상은 아직 없다"고 했다. 정무수석실 관계자도 "돌발 국면인 데다 아직 정돈된 상황이 아니어서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며 "입당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盧대통령 주변에선 열린우리당 측이 '총선 후 입당론'을 거론했을 때 "열린우리당이 盧대통령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을 것 같으냐"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었다. 그래서 盧대통령의 총선 전 입당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의 청와대 기류는 역전됐다. 총선 후 입당이 불가피하다는 쪽이다. 한 비서관은 "정무직 대통령으로서의 직무가 정지된 채 탄핵 심판을 앞둔 대통령이 입당이라는 정치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모양이 좋지 않다"며 "정쟁의 시빗거리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급등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겠느냐는 고려도 감지된다.

청와대 내에서는 盧대통령이 총선 전 입당하면서 재신임을 공식으로 제안할 경우 탄핵안 가결 후의 새로운 상황과 논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지적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만일 총선 후라면 盧대통령이 총선에서 한번 재신임을 받고 난 뒤 다시 헌재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헌재 심판이 총선 전에 나와 탄핵이 기각될 경우에도 총선 결과를 놓고 대통령의 거취 논란이 다시 일 가능성이 있다. 총선 전 헌재에서 탄핵이 결정되면 모든 게 무의미해진다.

이런 상황론 말고도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대통령의 진퇴와 연결시키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야당과 헌법학자.정치학자의 꾸준한 문제제기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참모는 "총선 전 입당은 이래저래 헌재의 심판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했다.

盧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문희상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유인태 전 정무수석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선거의 여권 프리미엄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으나 그렇지 않더라"며 "盧대통령이 법률가라서 뭔가 국면을 꼼꼼히 따져보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침묵 속의 盧대통령이 민심의 동향과 요동치는 총선 정국을 유심히 관찰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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