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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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2부 불타는 땅 떠난 자와 남은 자(29)잠시 말을 끊고 에가미는 가만히 가쓰요를 돌아보았다.
『저 사람… 조선사람이야.』 가쓰요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아니,당신… 안 돼요,당신.』 에가미는 눈을 깜박이면서 아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그의 턱에는 흰수염이 비죽비죽 자라 있었다. 『무슨 별일이 있겠소? 살아나면 제 갈 데로 갈 사람인데.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아?』 『위험하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까요?』 『사람인데.저를 살려주었는데 우리 늙은이를 해치기야 하겠어.』 다시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한숨처럼 에가미가 말했다.
『노부오 생각을 하고 있었소.』 말없이 가쓰요가 고개를 숙였다.그녀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노부오가 가 있다는 비루마(미얀마)에서도 일본은 패했다고 해.군인은 죽어서 산다고 하지만,패한 군인은 군인이 아니오.살아 있다면 어딘가에서… 노부오라고 저런 일이 없으란 법이 없지않소.』 『그건 안 돼요.그런 생각은 안 돼요.』 가쓰요가 울먹이듯 말했다.
『저 사람은 조선인,우리 아이는 일본인입니다.』 『이겼느냐 졌느냐의 문제지,지고 나면 다 같은 사람일 뿐이지.』 흐려오는눈으로 가쓰요는 바다를 내다보았다.막내 동생의 아들,유난히 가쓰요를 따랐던 어린 조카 니시다가 써 보냈던 유언장.이모가 만들어 주시던 초밥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전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던 그 편지.최후의 결전을 앞둔 전 장에서 본토의 가족들에게 써 보냈다던 그 유언장을 그녀는 떠올렸다.거기에는 그가 쓴마지막 시가 적혀 있었다.
봄이 되면 피어날 조국의 사쿠라여.
너보다 먼저 피어 웃으며 흩낱려갈 나의 몸이여.
가쓰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먼 바다에는 자욱한 안개가 수평선을 가리며,하늘과 한빛으로 흐려 있었다.눈밑을 닦아내면서 그녀가 말했다.
『나는 언제나 당신 생각에 따랐지요.저 조선인을 살리는 것도당신이 그러기에 따르는 겁니다.그러나,나는 아들아이를 저 사람과 비교하지는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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