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흑인은 아직도 선천적 결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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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왼쪽부터)이 2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케빈 러드 호주 총리와 회담이 끝난 뒤 대통령 집무실로 걸어가고 있다. 라이스는 이날 위싱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통령 출마설을 부인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흑인인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의 흑백 인종 문제를 ‘선천적 결손증(birth defect)’에 비유했다. 미국이 건국 때부터 안고 있는 태생적 결함이 인종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28일 워싱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나라엔 (흑백 차별이란) 모순과 역설이 있으며, 그것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스는 ‘인종 문제에 대한 버락 오바마의 연설을 들었느냐’는 질문에 “들었다”며 자신의 인종관을 자세히 밝혔다. 할아버지·할머니 얘기 등 가족사도 곁들여 설명했다.

오바마는 18일 “(흑백) 차별의 유산이 남아 있는 만큼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그에 대해 라이스는 “(인종) 문제의 여러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짧게 논평했다.

라이스는 “내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아버지는 자라면서 끔찍한 굴욕(terrible humiliation)을 견뎠다”며 “그럼에도 그들은 미국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흑인으로서 이해하고 싶은 건 이 나라가 흑인을 사랑하지 않고,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을 때도 흑인은 미국을 사랑하고 믿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국무부가 29일(현지시간) 본지에 보내 준 인터뷰 일문일답 내용.

-대선 경쟁 과정에서 인종 문제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나.

“내 집무실엔 초대 국무장관인 토머스 제퍼슨의 초상화가 있다. 나는 가끔 제퍼슨이 65대째 후임자인 흑인 여성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의문을 떠올린다. 이 나라가 건국될 때 위대한 기록에 새겨진 단어들(평등·인권 등)이 바츨라프 하벨(전 체코 대통령, 체코 민주화 혁명의 주역) 등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우리 건국 세력의 압도적인 요소론 작용하지 않았다. 흑인은 건국 세력이다. 아프리카인(흑인)과 유럽인(백인)이 이 나라를 함께 건설했다. 유럽인은 스스로 선택해, 아프리카인은 (노예) 쇠사슬을 통해 이 나라에 왔다. 건국의 현실이 멋지지 않았던 만큼 파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노예의 후손은 아직도 (백인에 비해) 좋은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진보가 있었지만 그런 선천적 결손증(‘흑인에겐 백인이 누리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에 맞서는 게 여전히 어렵다.”

-오바마의 연설을 들었나.

“정치 얘기는 하지 않겠다. 나는 가끔 (흑인의) 민권운동을 제2의 미국 건국이라고 말한다. 선천적 결손증을 극복하는 노력이 거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모든 흑인은 자식이 대학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교육을 잘 받고, 자신들보다 더 잘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뒷바라지하는 데 열중한다. 내가 2000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W 부시에게 끌린 건 외교정책이 아니라 낙오학생 방지(No Child Left Behind) 정책 때문이었다. 우리 흑인은 스스로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부르지만 우린 이민자가 아니다. 인종 문제와 관련해 대화의 초점은 흑인과 백인이 나라를 함께 건설했고, 같은 것(동등한 기회 등)을 원한다는 점에 맞춰져야 한다. 우리가 같은 걸 추구할 수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매우 힘들고 긴 투쟁의 여정이 있었다.”

-낙오학생 방지 정책의 효과는.

“굉장한 효과가 있다. 학생을 측정하지 않으면 학업 성취 여부를 알 수 없고, 학생이 배우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 책임을 지우지 않으면 학생은 배우지 못한다. 내 할아버지 얘기를 하겠다. 앨라배마에서 소작인의 아들로 자란 그는 배우고 싶어했다. 그는 흑인이 갈 수 있는 대학으로 장로교의 작은 학교인 스틸먼대학이 있다는 걸 들었다. 그는 면화를 팔아 모은 돈으로 그 학교에 입학했다. 2학년 땐 목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해서 대학을 마쳤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모든 구성원도 그를 본떴다.”

-부통령에 관심 있나?

“관심 없다. 나는 사회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1992년 캘리포니아에서 방과 후와 여름방학 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미국 국민이 교육을 잘 받고, 재교육도 받으면 우린 자유무역과 개방경제 시대의 리더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교육이 국가안보의 핵심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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