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칼럼>관철동시대 42.제2회 應昌期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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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조훈현을 중국의 패주라고 칠때 서봉수는 가끔 만리장성을 넘어내습해오는 북방의 몽고족이나 여진족에 비유된다.
그는 강성할 때는 더없이 강성하고 약할때는 턱없이 약한 특이한 존재였다.
이창호.유창혁 등장이후 서봉수는 만리장성 근처에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모두들『서봉수는 끝장났다』고 했다.조훈현은 91년이후 이창호.유창혁을 연파하며 극적으로 회생,바둑천하를 3분했다.조훈현.
이창호가 영토의 5분의2씩을 나눠가졌고 유창혁이 나머지를 가졌다.서봉수는 고비사막을 넘어 시베리아까지 후퇴한듯 타이틀전선에서 종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92년7월13일 도쿄(東京)에서 제2회 잉창치(應昌期)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가 개막되었다.초청받은 세계 24강중 한국선수는조훈현.이창호.유창혁.서봉수.양재호등 5인.비록 수는 적었으나제1회대회 우승자 조훈현과 동양증권배에서 린하 이펑(林海峰)을꺾고 우승한 천재소년 이창호가 유력한 우승후보대열에 들었다.
조치훈은 언제나 우승후보였고,우주류의 다케미야(武宮正樹)9단,오타케(大竹英雄)9단,린하이펑 9단이 다음으로 꼽혔다.
대회의 화제는 중국의 불참이었다.주최자인「잉창치바둑기금」은 천안문사태로 중국을 떠난 장주주(江鑄久)9단과 세계여류최강 루이나이(芮乃偉)9단을 대회에 초청했고 중국은 이에 반발,통째로불참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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