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클래식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마주침
유정아 지음, 문학동네
396쪽, 1만8000원

“베토벤의 삶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괴롭고 비참한 삶이었지만 베토벤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삶을 32개의 소나타로 그려보고 싶었다.”

지난 연말 1주일에 걸쳐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이렇게 말했다. ‘건반 위의 구도자’는 이 연주를 통해 베토벤을 마주했고, 콘서트홀의 관객들은 베토벤의 삶과 더불어 40년이 넘은 백건우의 음악 인생을 들여다봤으리라.

고전음악은 그런 것이다. 음악에 담긴 베토벤의 삶이 200년의 시간을 넘어 백건우에게 다가들고, 그의 연주를 통해 우리에게로 오는 것.

KBS 라디오 ‘FM 가정음악’을 진행하는 아나운서 유정아도 말한다. “모든 음악은 좋아하는 이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작곡자에서 연주자로, 또 다른 연주자에게서 듣는 이에게로 끊임없이 전이된다”고. 그리고 연주 대신 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모두의 것이 되도록 했다. 『마주침』은 그가 공들여 써 내려간 방송 원고를 책으로 묶은 클래식 에세이다.

“나는 그 어떤 필경사가 내 콘체르토 악보를 베끼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작곡할 수 있다”고 떠벌린 비발디, “예술은 모든 우연한 정치적 사건 너머에 있다”고 믿은 지휘자 푸르트벵글러, 휴대전화 판매사원에서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 오페라 가수의 꿈을 이룬 폴 포츠까지…. 저자는 스튜디오 마이크 앞에서 마주친 음악가들의 다채로운 삶 속에서 진정성을 찾았다고 했다. 신에게 바치든, 귀족의 입맛에 맞추든, 음반을 팔기 위해서든, 절로 우러나온 선율을 쏟아내든, 모든 음악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나만의 온전한 앎이 어디 있으랴”라는 그의 고백처럼 책에 등장한 음악가의 일생은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공을 넘어 한없이 고귀하고 숭고한 고전음악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저자는 그 일생을 조각 맞춘 글에 정성을 다했다. 차분하고 섬세하게 엮인 책은 고전음악의 아름다움을 품기에 모자람이나 넘침이 없다.  

홍주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