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좌담>災害방지 시스템 개선대책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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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이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단순히 부실(不實)공사 차원을 넘어 고객에 대한 안전의식 부재,사고 발생후 인명 구조(救助)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의 문제점을 한눈에 보여준 「총체적 부실」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다.정부가 좋다는 대책은 모두 내놓고 있는데도 이런 엄청난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이며,이에 대한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본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대책을 집중 점검하기 위해 3일 오전 관계 전문가들을초빙,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사회=정부가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이같은 일들이 되풀이되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申교수=무엇보다 사고가 나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을 마련.시행하기보다 임시 방편적인 대증(對症)요법으로 대처해온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건설공사의 기술적 특성과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책을 위한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가지를 들자면 우선 각종 대형 건설사업과 관련된 정책수립 과정의 문제점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도권 신도시 건설과정에서 경험했듯이 사업의 타당성이 인력이나 자재의 수급상황등 실제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에 관한 기술적 검토없이 주로 정치적인 차원에서 결정됐다는 점입니다. 건설업체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제한된 돈과 시간,그리고 어려운 건설여건등을 감안할 때 건설업체들은 정도의차이는 있겠지만 상당부분에서 부실(不實)시공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학계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건설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에 비해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재 전국에는 74개 대학이 건축학과를 가지고 있지만 교과과정이 천편일률적으로 건축설계에만 치중해 있으며 건설.시공등 보다 실무적인 분야를 가르치는 교수를 제대로 확보한 대학은 20여개 대학에 불과한 실정입니다.이런 여건속에서 건 설기술자가 길러질 수 없으며,때문에 대학 졸업후 현장에서 처음부터 일을 익히는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건설공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건설방식도 다양화돼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실정입니다.예를 들어 미국이나 중동등에서는발주에서부터 설계.시공.감리등 각 과정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별도의 관리자를 두는 「CM(Constructi on Management)방식」이 정착돼 있으며 턴키(일괄수주)베이스 방식등 건설공사의 방식이 다양한데 비해 우리는 설계.시공이 분리되고 감리가 따라가는 방식만이 유일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尹교수=건설공사 수주(受注)와 관련,우리나라에서는 발주(發注)업체가 심지어 공사 도중에 공기 단축.설계 변경등을 요구할수 있는 일방적 계약형태로 이뤄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국에서는 설계를 변경하는 것이 잦지 않을 뿐 아니라 상호 협의아래 이뤄지는 반면 우리는 민(民).관(官)의 관계는 물론민간 분야에서도 이같은 일방적 거래형태가 일반화돼 있습니다.
또 건설업은 마치 「첨단(尖端)」과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져중요성이나 국민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투자나 관리가 지나치게 소홀했습니다.
이밖에 건축사협회.건축가협회.학회 등 관련전문기관들은 폐쇄적인 회원상대의 업무에만 치중하는가 하면 경영자.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교육이나 홍보를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보니 안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져 이번과 같은 참사가 빚어진 것입니다. -사회=사고가 계속 되풀이되다 보니 항간에는 「다음 사고는 어딜까」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우리 주변에서 특히 재해에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지적한다면….
▲尹교수=워낙 많아 어느 한 두곳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특히 최근 폐쇄형 과밀공간이 무책임하게 확장되고 있는 점을 들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 대형 극장이나 교회.회의실등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특히 지하에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들 지하 집회공간은 현실적으로 재해에 무방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백화점 지하와 지하철역이 연결된 몇군데는 미로형으로 얽혀 있으면서도 불에 탈 수 있는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한 계산이나 대비는 거의 돼있지 않아 화재나 지진 등 재해가 일어나면 속수무책인 공간들입니다.
재해방지는 설계단계에서부터 고려돼야 함에도 중앙설계심의위원회에는 방재담당 인력이 한명도 없으며,정부가 시행하는 모든 설계심의 과정에서도 방재안전성능에 대한 심의는 없이 미관이나 교통영향평가등 일상기능 중심의 심의만 이뤄지고 있습니 다.
▲申교수=위험요인을 꼽으라면 최근에 건설된 일부 아파트(특히지하주차장),도시 가스배관을 들수 있습니다.아파트 지하주차장은신도시가 건설되는 도중에 설계기준이 변경되었는데 舊기준으로 설계한 아파트 주차장에 대형버스.소방차 등이 진 입한다면 상당한위험요인이 될수 있습니다.또 지하에 매설된 도시가스배관은 가스폭발이라는 가공할 위험에 비해 매우 소홀히 시공됐다는 것이 전반적인 지적입니다.
-사회=이번에는 재난에 대한 구조체계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이번 삼풍의 예에서도 봤듯이 지휘체계는 물론 필요한 장비조차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수 있을까요.
▲尹교수=우선 구난(救難)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이런 기술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삼풍의 경우 압쇄기.오렌지볼과 같은 건설해체 장비를 갖춘해체기술자와 굴토기술자 등이 가장 먼저 투입됐어 야 당연한데도불구하고 이런 기술자가 거의 동원되지 못했어요.
더욱이 군대에는 통로개척.하중분산을 위한 임시구조물설치를 할수 있는 공병단이 있음에도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일반 군병력에 의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누가 총지휘를 맡을 것인가에 대한 지휘체계나 지휘초소 하나 갖추지 못하다보니 결국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나흘씩이나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이아몬드 커트등 고가장비를 동원했을 경우 이에 대한 사후보상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비싼 장비가 신속하게 동원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鄭박사=방재 및 구조.구난을 위한 돈과 인력,조직은 특히 예산확보가 어렵습니다.인명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당장 효과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예산 편성때 가장 먼저 깎이고 맙니다.
한 예로 사고때 지휘초소로 쓸수 있는 고가도달용 지휘차량도 이미 서울시에서 도입을 검토했으나 예산을 이유로 마련하지 못한상태입니다.
또 위급시 공조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평상시 연습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입니다.
건물 붕괴나 화재등 사고뿐 아니라 환경문제등 재해의 종류도 다양화되고 있으며 이들은 농작물뿐 아니라 각종 구조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인식도 턱없이 부족한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회=삼풍백화점의 경우 불과 열흘여 전에 실시된 안전진단에서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은 점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안전진단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없는지요.
***염가 안전진단 필요하다 ▲尹교수=우선 안전진단을 받기가매우 어렵고 비싼게 문제입니다.환자가 처음부터 종합병원에 가지않듯이 안전진단도 상시적으로 염가에 받을 수 있는 단계가 필요한데 잘 되지않고 있습니다.
▲鄭박사=예산을 절감할 때 우선적으로 유지.보수비부터 절약하려 하고,따라서 적절한 안전진단을 받지 않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회=지금까지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됐는데,이런 사고가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지요. ▲申교수=극단적으로 말해 당장은 개선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업계.학계.정부.언론.시민등 우리사회의 모든 부문이 연계돼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일시적인 제도 보완보다는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종합적인 노력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이미 많은 건축물이 잘못된 관행속에서 지어졌기 때문에 우선 사고 가능성이 높은 구조물을 찾아내 진단과 보수.
보강을 해야겠지요.
▲尹교수=무엇보다 건설 분야도 「첨단 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이를 위해서는 건설에 투자가 확대돼야 하며 교육 체계도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또 재해방지가 설계단계부터 고려될 수 있도록 심의에 반영시켜야 하며 특히 사고를 유발한 업체에 대해서는 피해자보상뿐 아니라 도시기능마비 등 시민에게 미친 피해와 타업체가 해외수주 등에서 입은 타격등 광범위한 보상을 하게해 재해에 철저히 대비하도록 해야합니다.
▲鄭박사=방재및 구조체계 구축을 위한 예산 마련을 위해 시민들의 합의하에 방재에 관한 세금신설등을 고려해 볼수 있겠습니다.방재에 대한 비용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부분이라는 인식과 또 유지.보수 및 안전관리에 대한 투자가 재산가치 를 높이는 것으로 인식이 확립되도록 유도해야 하겠습니다.
-사회=오랜 시간 수고 많았습니다.부디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이런 불행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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