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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색문화공간>11.런던 코벤트가든 시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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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4일 브루스하우스어필 오케스트라 뮤직 마라톤.7일 샌안토니오 소년합창단 공연.15일 행오버 아카펠라싱어스 공연.16일 런던재즈밴드 공연.23일 버몬트 합창단 공연」….
얼핏 어느 뮤직홀의 공연안내문처럼 보이는 이것은 영국 런던의코벤트가든시장(Coventgarden Market)의 6월 공연일정표다.
코벤트가든 시장은 원래 즐비한 꽃가게로 유명했던 재래시장.64년 제작된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무대로 주연인 오드리 헵번이 꽃을 팔던 곳이기도 하다.
멀리서 시장건물의 삼각형 유리지붕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잔뜩 찌푸린 런던 하늘과 대조를 이루는 활기찬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달4일 건물앞 광장 웨스트피아자에서는 50여명의 단원으로구성된 브루스하우스어필 오케스트라가 정오부터 오후4시까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뮤직 마라톤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드리 헵번이 자신의 꽃을 망가뜨린 신사에게 꽃값을 물어내라고 떼를 쓰며 걸터앉아있던 세인트폴스교회의 장대한 기둥 사이에설치된 빨간 주단이 깔린 단상 위에서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거리 오케스트라」의 모습은 실로 장엄하 면서도 이채로웠다. 주위을 둘러싼 1천여명의 시민들도 4시간이나 계속되는 공연동안 거의 자리를 뜨지않고 선채로 오케스트라와 하나가 돼 감상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일반적인 음악회와는 달리 거리공연인만큼 흥에 겨운 관객들이 선율에 맞춰 몸을 움직이거나 손을 흔들어대는등 자유스런 분위기가 인상적이다.이를 어떻게 시장의 모습이라 할수 있을까.
이 시장은 81년 대대적 보수작업을 벌여 번듯한 점포와 식당이 늘어선 현대적 쇼핑몰로 탈바꿈한 뒤부터 음악회.패션쇼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연중 열고있다.코벤트가든 시장이 런던시민의 사랑을 받고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두개의 상가건물이 긴 회랑으로 이어져있는 이 시장은 모두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문화행사를 위해 모두 세곳의 공연장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웨스트피아자로 클래식 외에도 합창.재즈.아카펠라등 여러 장르의 음악공연과 퍼포먼스.거리농구대회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옷가지.장신구등을 주로 파는 좌판과 셀프서비스 간이식당이 있는 회랑의 북쪽 끝에 위치한 노스홀도 코벤트가든시장의 주요 공연무대중 하나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않지만 관객을 위한 약간의 벤치도 마련돼 있고 회랑의 반원형 지붕의 공명으로 음향효과가 좋아 소규모 음악회나 라이브 무대가 자주 열린다.
지난달7일 열린 켄트디자인학교 학생들의 패션쇼 역시 그중 하나로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의 화려한 색상과 재기 넘치는 의상들이활기찬 생음악 연주와 함께 선보여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했다.
패션쇼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시간 노스홀 왼쪽 건물의 지하 광장에서는 시그마 4중주단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하라고는 해도 천장 없이 위로 트여있어 청중들이 1층 난간과 지하로 통하는 계단.광장 바닥을 가득 메운채 이들의 감미로운 연주에 빠져들고 있었다.
시그마 4중주단의 리더인 중국계 영국인 토니 창(35)의 말대로 『격식을 차려야 하는 일반 음악회보다는 자유스럽고 청중들과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거리연주를 선호하는』많은 음악인들이 이곳 코벤트가든 시장 무대를 자주 찾는다.
특히 여름철에는 어느날이건 세곳의 공연장 가운데 한두곳 이상에서 크고작은 행사가 열려 하루일과에 지친 시민들이 시장을 찾아 피로를 풀기도 한다.
상가번영회 직원인 배너맨이라는 청년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쇼핑감각도 뛰어날 수밖에 없다.따라서 우리는 좋은 상품을 많이 확보하는 만큼 문화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하고있다』고 자랑했다. 이처럼 시장을 찾은 사람조차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과접할 수 있는 코벤트가든 시장의 모습은 영국병으로 대변되는 산업 침체 속에서도 고부가가치의 문화상품 개발이 활발한 영국의 또다른 얼굴을 웅변하고 있었다.
값싼 입장료로 보다 많은 관객을 수용하기 위해 음악홀의 로열석 자리를 모두 뜯어내고 바닥에 앉은채 오페라나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는 행사를 매년 열고있는 로열오페라하우스나 BBC홀의예를 굳이 들지않더라도….
글=李勳範.사진=朴淳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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