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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워치] “성실함만으로는 글로벌 경쟁 안 돼 … 창의성 더해야 일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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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봉황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 머리가 되겠다(寧爲鷄頭,不爲鳳尾)’. 중국인들의 창업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성어다. 그들은 남들보다 한발 앞서 기술을 개발하고, 창업전선에 뛰어든다. 후베이(湖北)성 우한의 한양(漢陽)강철에서 일하고 있는 한 근로자의 모습에서 중국 기업의 기술혁신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우한 AP=연합뉴스]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린다’는 건 한국 음식의 미덕이다. 풍부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풍부한 것까지는 마다하지 않지만 뭔가 다른 것을 덧붙여야 한다. 일단 남이 맛볼 수 없는 재료에 요리 방법이 특별해야 한다. 이 정도 돼야 “참 잘 먹었다”는 칭찬이 나온다.

예를 들어 돼지 힘줄 먹는 법을 보자. 죽은 돼지 힘줄은 특색이 없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산 돼지 힘줄로 만든 요리인 ‘훙사오티진얼(紅燒蹄筋兒)’이 별미로 포장돼 상에 오른다. 죽은 돼지 것에 비해 값이 엄청 비싸다. 진귀한 재료로는 모기 눈알, 코끼리 코, 원숭이 뇌수, 히말라야 고산에 사는 설표(雪豹)의 3개월짜리 새끼 등 셀 수 없이 많다. 요리부터 특이함을 즐기는 취향에서 드러나듯이 중국인들은 겉보기와 달리 사고와 감성은 ‘늘 새롭고 독특한 것을 추구(標新立異)’하는 것이다.

기업의 정신 세계도 이와 다를 게 없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함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초일류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중국 비즈니스의 불문율이다. 요즘 잘나가는 중국 기업 우시상더(無錫尙德)의 스정룽(施正榮·45)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열심히 하면 돈은 좀 벌겠지만 영원히 2류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러면서 그는 ‘창조와 혁신’의 정신을 내세운다.

장쑤(江蘇)성 우시에서 기업을 일으켜 한국과 독일에까지 태양전지 기술을 수출하는 우시상더의 창업과 성장 과정에는 스 회장의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창춘(長春)이공대학을 졸업한 그는 중국과학원 상하이(上海)광학정밀기계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호주 유학 길에 오른다. 1988년이었다.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서 세계적인 태양전지 권위자인 마틴 그린 박사를 만났다. 그 밑에서 태양전지 기술 개발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연구원 신분을 유지하면서 호주 태양전력회사의 이사로 일했다.

스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0여 개의 특허를 보유한 덕분에 엄청난 연봉을 받았고 생활도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풍족했지만 2000년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귀국길에 올랐다.” 호주에 눌러 앉았다면 그는 평범하게 성공한 비즈니스맨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는 중국 중앙방송국(CCTV)으로부터 춘추전국시대에 정치적 성공을 뒤로 하고 강호에 나가 사업을 벌여 성공한 중국 최초의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자 상업의 신(神)으로 일컬어지는 범려(范<8821>)와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남보다 한발 앞서자(快人一步)’란 구호를 입에 달고 다녔다. 남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전에 그는 한발 앞서 중국에 태양전지를 보급하겠다고 덤벼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불모지와 같은 태양전지 산업을 키우기 위해 발이 닳도록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명하고 납득시켰다. 운도 따랐다. 중국 정부가 환경 문제 때문에 무공해 청정 에너지 산업을 강조하면서 태양전지가 빠른 속도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창업 5년 만인 2005년 12월 우시상더는 미국 뉴욕증시 상장에 도전해 보란 듯이 성공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의 첫 민영기업이란 기록도 세웠다.

지난해 우시상더는 29% 성장했다. 매출액도 100억 위안(약 1조3000억원)을 돌파했다. 이런 비약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 저력은 우수 인력 육성에 대한 스 회장의 대대적 투자가 뒷받침됐다. 6000명의 직원 중 연구개발(R&D) 전담 인력만 200명이다. R&D에 매출의 5%를 꾸준히 쏟아 붓고 있다. “세계 최강의 연구 인력을 확보해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스 회장의 경영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 덕분에 우시상더는 글로벌 경쟁자들을 제치고 3세대 태양전지를 개발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은 스 회장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지금도 중국에는 제2, 제3의 스정룽과 우시상더를 꿈꾸는 기업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식을 줄 모르는 창업 열기다. ‘천하에 못 하는 비즈니스가 없다(天下沒有無作的生意)’는 자세로 벌떼처럼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 대학 캠퍼스에는 “창업이 운명을 바꾼다(創業改變命運)”는 말이 대학생들 사이에 널리 유행 중이다. 벤처캐피털(위험 투자 자본)을 뜻하는 VC란 낯선 단어가 신문에 설명도 없이 매일 등장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 해에도 수천 개의 기업이 탄생했다 사라지곤 한다.

CCTV의 경제전문 채널에서 창업을 소재로 한 ‘중국에서 성공하자’ 프로그램이 인기다. 매회 겁 없는 초보 창업가들이 출연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전문 패널의 혹독한 비평을 듣는다. 최근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유학생 양판(楊帆·20·여)은 “세균 감염 위험이 없는 생명공학 재료로 1700여 종의 생활용품을 만들 기술이 있으니 투자해 달라”고 말해 반향을 일으켰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지원해 줄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겠다는 창업 도전자에게 방청객이 느닷없이 “당신은 길거리에서 가짜 DVD를 사본 적이 있느냐”고 돌발 질문을 던질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패널을 맡고 있는 알리바바닷컴 마윈(馬云) 회장은 “모방하면 실패한다”면서 도전자들에게 창조적 마인드를 주문했다. 마 회장은 변변치 않은 월급만을 받던 대학 영어강사직을 차 버리고 인터넷 기업을 창업해 지금은 세계적 인터넷 상거래 업체를 일궜다. 알리바바닷컴을 만들면서 “미친 놈”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던 마 회장은 “독창적 사고에서 창업한 뒤 독특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만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 사회자는 “우리 조상들이 세계 3대 발명품인 화약·나침반·종이를 만들었는데 그 후손인 우리가 무엇인들 못 하겠느냐”고 장단을 맞췄다.

이처럼 창조와 혁신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충만해지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기존 기업도 나온다. 79년 단돈 1000위안으로 노점상을 시작해 메추리 사육 사업으로 큰돈을 번 신시왕(新喜望)그룹의 류융하오(劉永好) 회장. 그는 이제 중국 최대의 농식품 기업을 넘어 다국적 곡물 메이저 카길을 모델로 세계적 기업이 되겠다고 벼르고 있다.

각 분야에서 세계를 향해 겁 없이 덤비는 기업인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중국이 개최하는 세계적인 보아오(博鰲)포럼의 룽융투(龍永圖) 이사장은 마침내 최근의 한 공식 석상에서 “중국은 이미 혁신시대로 진입했다”고 당당하게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우시(장쑤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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