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미국 국채 더 안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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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한국의 국민연금이 미국 국채를 더 이상 사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미국 국채에 지나치게 편중된 해외 채권 투자 대상을 좀 더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신용등급이 비슷한 미국 회사채나 유럽 정부채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자산 구성을 다양화하는 것이지만, 속내는 미국의 금융시장 불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혔다. 각국의 정부나 연기금은 안전자산 확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대거 매입해 왔다. 운용자산 220억원으로 세계 연기금 중 5위 규모인 국민연금도 해외 채권 직접투자의 90%(14조원)가량을 미국 국채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가 터진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6월 연 5%에 이르던 미국 국채 2년물의 수익률이 최근 연 1.7%로 급락한 것이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가는데 가격이 너무 올라 더 이상 매입하기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국민연금은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쉽게 개선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 조치가 효과를 내기 시작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날 국민연금의 미국 국채 매입 중단 소식을 전하며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16개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지난주 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모여 미국 국채에 집중돼 온 투자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협의했다고 전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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